무르익는 파리 평화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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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전망>3극 타결의 실마리 모삭|외교적 고립 느낀 하노이, 유연성 종용에 반대 못할 듯|선 휴전과 연정수락 여부가 초점
최근 「키신저」 북경방문과「포드고르니」의 「하노이」방문, 그리고 그 중간의 「레·둑·토」·주은래 회담 등 일련의 숨가쁜 방문외교로 「파리」의 공식·비밀회담의 재개와 월남전의 극적인 타결의 실마리가 풀릴지도 모른다는 설이 강력히 떠오르고 있다. 이제 미국은 북경·「모스크바」 정상회담을 매듭지은 뒤 미·소·중공 3극 구조의 틀 안에서 월남문제를 타결해 보려는 자세인 것 같다.
즉 전장에서의 휴전과 월남 내 비 공산주의 정권의 유지라는 2개의 미국목표가 「하노이」에 의해 동의되도록 강대국들이 연대보증을 서자는 뜻이다.
이러한 미국의 의도에 대해 소·중공·월맹의 자세는 어떠한가.
미국의 기뇌봉쇄 이후 소련이 보여준 온건반응이나 중공의『말뿐인 강경』으로 미루어 벌 때 강대국들은 이제 월남문제가「3극 평화」 모색에 장애가 되며 그 장애를 하루속히 제거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한때 「유럽」냉전의 촛점이었던 「베를린」문제와 양 독 관계가 소련의 대 동독 압력으로 탈냉전 했듯이 「포드고르니」와 주은래가 「레·둑·토」를 각각 만나 「3극 평화」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하노이」의 유연성을 종용했으리란 추측이 나돌고 있다.
문제는 소·중공에 대한 「하노이」의 반발이 어느 정도인가, 또는 소·중공의 강대국의지가 「하노이」의 철저 항전에 대해 어느 만큼의 권능을 갖는가에 달려있다.
「하노이」의 기관지가 「포드고르니」의 방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그 대신 과거 국제공산주의의 단합을 주도한 「디미트로프」를 대서특필 찬양한 것은 명백히 저들의 강력한 반발자세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 있어서 현실적인 약점은 큰 것이다.
즉 기뇌봉쇄와 「스마트」탄을 사용한 북폭강화로 「하노이」의 산업동맥이 대파되고 중공경유의 육로를 통한 보급수송이 여의치 않아「하노이」전력에 한계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하노이」는 또 두 차례 정상회담이후 외교적 고립을 느끼고 있는 게 분명하다. 5월 2일 「키신저」와의 비밀회담이 결렬된 이후 「레·둑·토」는 누차 미국기자와의「인터뷰」를 거듭하면서 5월 12일「워싱턴·포스트」기자에게는 『월남에 공산정권을 강요하는 게 아니다』는 「회유전술」을 썼다. 이 같은 불확정적인 상황 속에서 미국이 소·중공을 3극 구조의 「구속성」으로 얽어매어 등에 업고서「파리」회담에 임할 경우 미국이 요구하고, 소·중공이 종용했을지도 모르는「하노이」의 양보사항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그것은 필경 월남의 차기정권 구성을 둘러싼 문제일 것이다.
애초에 공산 측은 ①「티우」대통령을 거세하고 ②「사이공」정권을 새로 구성하며 ③「베트콩」과 신 정권이 중립세력과 3파연정을 만든다는 원칙에 미국이 동의하면 휴전과 포로석방에 응하겠다고 버텼다.
그러나 5월초「레·둑·토」의 「파리」귀임 성명에서는 ①「티우」는 거세하되 ②「사이공」정권은 그대로 두고 반대세력 탄압정책만 중지하면 ③그 정권과의 연정에 응하겠다는 선으로 약간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제네바」협정 14조를 제시했다. 그것은 상호보복을 금지한 규정이다.
그러나 「키신저」는 5월 9일의 기자회견에서 소위 중립파는 곧 친공파이니 결국 공산주의자의 다수파 정권을 받아들이라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그리고 휴전을 그보다 앞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휴전을 먼저하고 「사이공」과 「베트콩」의 합작을 모색하느냐, 아니면 「사이공」정권의 성격을 바꾸고 「베트콩」과의 연정이 수락된 연후에 휴전을 하느냐 하는 것이 교섭의 핵심을 이룰 것이다.
여기서 「하노이」의 양보가 종용되는 사항은 선 휴전일 것이다. 이미 「프랑스」소식통은 「하노이」가 「포드고르니」에게 미국의 북폭이 중지되면 휴전에 응하겠다고 통고했다는 설을 전하고 있다. 이 소식통은 「하노이」가 휴전의 댓가로 북폭 중지 이외의 전제조건을 거론치 않았음을 주시하고 있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하나의 가설을 세워보자.
즉 미국의 북폭 중지와 「하노이」의 휴전동의로 시작해 미군철수와 포로석방을 맞바꾸고 그와 병행해 「사이공」정권과 「베트콩」의 정치적 타협을 진행시키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중 해결방법은 「조세프·크래프트」가 언급한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모스크바」가 「하노이」의 경계심을 무마하고 「키신저」가 북경의 반발을 막아내는 게 필요하다. 「포드고르니」의 귀국성명이 「하노이」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까닭도 의심 많은 「하노이」를 달래려는 「말의 성찬」일지도 모른다. <유근일 기자>

<군사적 배경>월맹군 전력 눈에 띄게 쇠퇴|협상 진전 따라 공방전 치열할 듯
【사이공 신상갑 특파원】지난 3월 30일의 월맹군대공세는 적어도 월남 내에서 열세에 몰고 있던 공산측의 입장을 크게 강화시켜줬다.
3개 사단의 DMZ 돌파로 시작된 이 공세는 68년의 구정공세보다 훨씬 규모가 컸고 한때 월맹군 정규병력의 95% 가까운 11개 사단까지 월남에 투입되어 월남의 존립자체를 위협하는 듯했다.
월맹군은 이 공세에 전례 없이 「탱크」대를 대량 투입, 67∼68년중 미군이 실시한 것과 비슷한 대규모 정규전 형식으로 4개 전선에서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공세 2개월여가 지난 지금 월맹군이 거둔 성과는 북부「쾅트리」성의 점령에 그치고 있다.
「메콩」삼각주에 대한 공격은 시작되자마자 끝나버렸고 「안록」을 중심으로 한 치열한 공방전은 교착상태를 보이고 있으며 중부해안의 「빈딘」성에서는 북부지역 일부의 점령으로 일단 조용해졌다.
이 시점에서 볼 때 월맹군이 목표한바 는 무력에 의한 월남 흡수가 아니라 일부지역 장악 및 월남군 약화로 유리한 협상의 고지를 점하려는데 있었다고 추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네 차례에 걸친 월남군의 반격작전에도 불구하고 「쾅트리」의 실지회복이 쉽사리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닉슨」이 주도한 전쟁의 월남화는 환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이점은 특히 미·중공·소간에 월남평화에 관한 막후 교섭이 활발해진 요즘의 사정을 감안할 때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대공세가 일기 전에 그와 같은 접촉이 있었을 경우 월맹 측이 쥐고있는 협상「카드」는 「라오스」 및 「크메르」내에서 그들이 쥐고있는 군사적 「이니셔티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사면의 형세는 차차 월남 군에 유리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2개월여의 대규모 공세와 월맹해안의 봉쇄로 월맹군의 전력은 눈에 뛸 정도로 쇠퇴하고 있으며 월맹군은 이미 장악한 지역을 방어해야하는 수세에 몰리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월남군의 실지회복 작전과 애써 얻은 강점을 고수하려는 월맹군사이에 더욱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외교적 경위>방문외교…협상가능성 시사|맥거번의 「즉각 종결」공약도 작용
「키신저」북경방문 전야에 주은래와 「레·둑·토」회담이 행해짐으로써 그 동안 교착돼있던 「파리」회담의 타개가 예상되고 있다. 68년 3월에 제의, 69년 1월부터 성과는 부진해도 계속돼 오던 이 회담이 그나마 정신없는 단속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것은 지난 3월 23일, 제 1백 47차 회담 이후.
『과거 3년 6개월간 공산 측이 진지한 토론을 거부했기 때문에』「닉슨」대통령은 무기한 회담중지를 지시했던 것. 공식회담이 월남전 해결에 무용하다는 결론이었다.
9개항 평화안(『전 연합군을 71년까지 철수하면 포로석방에 협상』등)을 내걸고 「키신저」와 비밀협상을 벌였으나 그에 의해 비밀접촉 사실 및 그 무성과가 공개(72년 1월)된데 이어 기습적으로 회담중지를 발표한 미국의 고자세에 접한 월맹은 당황했다.
3월 30일부터의 월맹 대공세는 미측 고자세에 대한 반발이었을 수도 있다. 회담중지 5주, 대공세 개시 4주만인 4월 27일 미국은 『침략행위를 종식시킬 조처에 관한 토의를 첫번째 의제』로 요구, 다시 회담을 열었다.
「키신저」의 「모스크바」방문직후였고 「닉슨」방소가 임박한 시기적 조건과 68년이래 중단됐던 북폭 재개 및 월맹항만 봉쇄라는 군사적 여건으로 실질회담이 예상됐다.
그러나 북폭 중지를 첫 의제로 내세우는 공산 측 요구에 부딪친 미국은 『모든 가능한 경로를 통했으나 진전 없었다』는 발표와 함께 5월 4일 다시 회담을 중단했다.
「레·둑·토」-주 회담, 소 최고회의간부회의장 「포드고르니」의 「하노이」방문, 그리고 「키신저」 북경방문을 앞두고 「파리」회담 재개 및 실질적 협상 가능성이 거론되는데는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 미국 내 사정-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선두주자 「맥거번」의 『월남전의 즉각 종결』 공약을 의식한 「닉슨」 대통령이 조속한 종전방안을 서두를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최근 전국의 교착에 따라 협상 「테이블」에의 복귀를 희망할지도 모르는 월맹내부사정. 사실 그 동안 월맹은 『월남에 공산정권을 「강요」할 의사는 없다(레·둑·토)』, 『「사이공」정부는 앞으로의 연립정부에 대표를 임명할 수 있다(월맹외상 「구엔·두이·트린」)』등 다소 누그러진 자세를 은근히 표시해 왔다. <한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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