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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변모하는 가치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 15일 스승의 날, 남자 중학교의 K여교사는 제자들로부터 「브러지어」와 「스타킹」 그리고 꽃 선물을 한아름 받아 들었다.
그것도 반 전체의 선물이 아닌 개인적인 것으로 K교사는 남학생들의 대담한 행동에 놀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중학생들 사이에선 이러한 행동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숨기지 않고 할 수 있을 만큼 선생님들 세대와는 달라진 것이다.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젊은 세대들의 희망적인 변모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젊은 층의 교사들은 이러한 변모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사제간이 정다와 질 수 있다는 것을 들어 좋게 보고 있지만, 한편 나이 많은 층의 교사들은 전통적인 예절 관념의 한계가 너무도 갑자기 무너진 것이라고 두렵게 관찰하고 있다.
교무실을 스스럼없이 드나들 수 있으며 심지어 학교에 대한 불만까지도 공개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이들 학생들은 그렇기 때문에 어른 사회의 언행 불일치를 가장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어른들의 일은 좀처럼 곧이 듣지 않으려고 하는 학생이 학년이 높아질수록 늘어간다.
TV「매스컴」을 통해 어른들 세계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교사도 있다. 한 교사는 『비록 어린 학생들이지만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통하는 얘기를 하게 되려면 두 달 이상의 접촉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선 남을 믿으려는 생각이 전혀 없는 「부정의 세대」라고 그는 표현한다.
「부정」의 범위는 이렇게 대인관계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장래 내가 되고 싶은 대로 될 수 있다는 말은 「유치한 망상」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미래에 대한 것보다는 전적으로 현재의 일에 관심으로 현재의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 우선 부정을 하면서도 「현실」을 긍정하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모순을 나타낸다. 「현실」이 어떻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에 앞서 그 「현실」 속에서 어떤 길이 최선인가 만을 재는 것이다.
배금 사상은 어휘 자체만 약간 어색할 뿐 이들에게 널리 퍼져 있다. 현실주의의 당연한 결과다.
『돈이 없으면 할일을 못한다』는 생각은 이들 학생들의 상식이 되고 있다.
『나는 예술 방면을 해보고 싶지만 어른이 되면 비참해진다는 부모님 말씀을 듣고 포기했다』고 말하는 우등생도 있다.
물론 그들은 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거기에 돈이 포함되어야 더 좋다는 것이다. 돈의 위치를 사회 생활의 기본 조건으로 보려는 경향이 짙다.
오랜 교단 생활을 해 왔던 한 교사는 『요즘 중학생들의 경제 관념은 오히려 얄미울 정도라고 말했다, 돈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학우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학생은 대부분 공부 잘 하고 돈 많은 즉 「무엇이든 잘하는」학생이다.
이러한 경향들은 또 이들의 철저한 이기주의를 뒷받침한다.
무엇이든 자기에게 이익이 없으면 손을 대지 않는다. 자치 모금이나 기부금엔 우수한 학생일수록 피하려고 한다.
점심시간 반찬을 혼자만 먹는 것은 예사이며 책도 좀처럼 빌려 보려고 하지 않는다.
요즘 금지하고 있는 과외공부도 많은 학생이 참가하고 있으면서 옆 급우들에겐 비밀로 하기 때문에 전혀 실태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주변의 학교 방침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은 이들의 연령 때문이 아닌 듯 하다.
사회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현실적인 눈, 이기주의가 섞여서 이들을 통해 비쳐 나오는 것은 한마디로 방향감각의 마비이다.
『우리에게도 참다운 종교가 있고 원죄 의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교사가 안타깝게 말하듯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한 뚜렷한 길을 그들은 갖고 있지 못하다. 『극장을 가지 말라고 하면서 중학생을 위한 영화 한편 제대로 만든 것이 있읍니까?』이러한 그들의 불만처럼 『학생은 사회 전체가 교육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사회가 반영되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어떤 교사의 말은 지금 누구에게나 뼈아픈 자각임엔 틀림없다.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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