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석각에 쏟은 정열 40년|전북 익산 황등석 공장주 김삼득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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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돌을 쪼고 매만지는 고달픈 석공으로 한 평생을 살아온 전북 익산군 황등면 황등석 공장주인 김삼득씨 (58)
다른 사람들은 김씨가 돌과 싸워온 정력을 딴 일에 바쳤다면 벌써 큰 재산가가 됐거나 대성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금씨는 후회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자신이 못다한 석공일을 두아들에게 가업으로 물려줄 셈.
김씨가 석공으로 일해온 것은 올해로 꼭 41년째. 손가락 마디마디에 맺힌 옹이가 힘겹던 지난날을 말해주고도 남는 듯 했다.
환갑을 바라보는 김씨. 장정들도 다루기 힘든 큰돌을 마치 솜덩이 다루듯 이리저리 굴린다. 단단한 화강암이 김씨가 휘두르는 망치와 쇠정에 쪼아지는 것을 보면 신기스러울 정도다.
김씨는 17살 때부터 석공이 됐다.
가난한 목수의 3남1녀 중 막내로 보통 학교를 겨우 마친 그는 우선 손쉽게 석공 일을 시작했다.
고향인 전북 옥구군 미면 신기리의 이웃마을 황등에는 그때만 해도 돌을 쪼아 비석을 만드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질이 좋은 돌이 많기로 유명한 황등에 같은 나이 또래의 친구들 여럿이 함께 일자리를 구했다.
그러나 모두가 몇년 돌 일을 하다 그만두고 지금까지 이토록 오래 남은 사람은 김씨뿐이다.
김씨가 길러낸 명석공만도 1백여명이 넘는다. 만들어낸 석조품만도 차로 몇「트럭」분 수천 점에 이른다.
김씨는 비석이나 깎는일 반석공과는 달라 연구해서 창작품을 만든다.
그래서 주민들은 그를『조각가 김 서방』이라 부른다.
이제 쌓아온 기술로 쇠망치를 놓아도 벌이를 할만한 경륜이 된 김씨이다.
그러나 한결같이 지금도 초년생 석공과 다를 바 없이 지내는 하루의 일과…
서울 발 목포행 187호 완행 열차가 새벽녘 적막을 깨고 황등역을 지나는 아침 5시50분.
김씨는 이미 잠자리에서 일어나 공장에서 쇠망치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탕탕탕…』 돌을 쪼기 시작한 것이다.
김씨는 새벽 일찍 우선 1시간쯤 돌을 쪼아야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고 했다.
혼자 아침한때 일을 마친 다음 자기 돌 공장에서 일하는 10명의 제자 석공들을 깨운다.
제자들과 함께 아침을 들고나면 일거리를 나눠준다. 일일이 설계를 펴놓고 작업 지시를 받은 10명의 제자들은 제각기 돌을 골라나선다.
제자들 가운데는 4, 5년식된 숙력 석공들도 있지만 김씨는 돌에 먹줄을 쳐주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석공들이 하는 작업과 정중에 김씨의 손길은 마지막에 미친다.
불상의 얼굴, 사자의 주둥이 등은 직접 정을 댄다. 자비스러워야 할 부처님의 얼굴과 용맹과 위엄이 곁들여져야할 호상의 모습은 그의 독톡한 수법이 아니면 만들기 힘든 때문이다.
손수 작업이 없을때는 채석장에 가는 일과가 제일 우선적이다.
일감이 들어오는대로 사자감이나 부처감 돌을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돌을 고르는 김씨의 눈은 단 한번의 실수도 있을 수 없다. 골라 쓴 돌을 꺼내고 쪼아내 석각을 하다 망가진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실물 크기의 사자상의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다. 석재 값 5천원, 20일 작업 노임 3만3천원, 세금 등을 포함 4만원짜리라고 한다.
한몫에 큰 돈이랄게 없다는 얘기다. 단단한 돌을 맨손에 정과 망치로 쪼는 고된 하루의 작업은 『머리 골을 파헤치는 고역』이란다.
이런 생활 속에서도 술과 담배를 모르는 그를 어떤 사람은 『돌 같은 사람』이라지만 제자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이런 일이 있었다. 사자상 하나가 거의 다돼가 김씨의 마지막 손질만 남아 있었다. 숙련공 이모씨 (32)에게 일을 맡기기로 했다.
완전한 작업의 기회를 많이 줘 자신 있는 석공으로 독립시키는 것을 김씨는 지도의 원칙으로 삼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씨는 거의 다듬어진 사자상의 머리를 쪼다가 그만 한쪽 귀를 떨어뜨렸다. 순식간에 4만원짜리 사자가 쓸 못 없는 돌덩이로 돼버린 것이다.
김씨는 조금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한번 실수가 백가지를 가르친다』고 격려해줬다.
김씨가 좋아하는 작품은「살아 있는 상」이란다. 재래식 비석이나 탑 종류보다 비록 석각물이지만 생명의 대상물인 사자상이나 부처 같은 것들을 많이 만든다.
그러나 아직도 「생명」을 작품에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며 장남 종현씨 (37)와 차남 부웅씨 (34) 에게 더 좋은 석각물을 만들도록 하는 일을 물려주겠다는 것이다.

<이리=이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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