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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0만원 연봉자, 1800만원 뛸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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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기업에 다니는 A씨(34·생산직·3년차)가 1년에 받는 돈은 6287만5000원이다. 그의 연봉 가운데 연장근로나 야간근로, 휴일근로, 연월차 수당 같은 변동성 임금은 1767만원에 달한다. 기본급(1398만원)보다 훨씬 많다. 쉬는 대신 일을 더 해서 임금을 불렸다.

이르면 내년부터 그의 연봉은 확 뛸 전망이다. 때만 되면 지급되는(정기적) 상여금과 휴가비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통상임금은 연장근로나 야간근로, 연월차휴가, 생리휴가비의 산정기준이 된다. A씨의 경우 현재 산정기준액(통상임금) 1596만1000원이 2993만2000원으로 87.5%나 불어난다. 이렇게 되면 10일의 연차수당만 50만9000원에서 93만4000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난다. 지금처럼 연장근로나 야간근로를 하면 그의 연봉은 1844만5000원 늘어 8000만원대에 진입한다. 현 수준에서 임금이 동결되더라도 29%가량 오르는 것이다. 이 회사 인사담당 임원은 “현재로선 근로자별로 얼마나 오를지 추산하기 힘들고 막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수당 많은 대기업 근로자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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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상임금 산입 기준과 관련된 소송은 다음 달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와 별개로 정부와 여야는 수년간 노사 간 쟁점이 됐던 통상임금 기준을 아예 법에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기성을 띤 근로의 대가로 지급하는 금품’을 모두 통상임금으로 간주하는 방향이다. 지급되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상여금이나 휴가비, 명절 귀향비, 가정의 달 지원금, 김장보너스, 통근비, 통신비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얘기다.

 법안이 통과되면 별도의 임금 인상 없이 임금이 10~30%가량 늘어나게 된다. 국내 근로자 전체 임금은 422조원 정도다. 상여금과 각종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기업은 최소 38조원가량을 더 부담해야 한다(한국경영자총협회 추산). 단순 산출치로만 10%가량 느는 셈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13조원, 한국GM은 8100억원을 추가로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전체 근로자의 임금수준은 오르겠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간의 임금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대기업일수록 수당 종류가 다양하고 많은 반면, 중소기업은 수당이 몇 개 되지 않아서다. 직원이 165명인 운수업체에서 일하는 B씨(31·현장직 3년차)는 현재 연봉(4264만원)보다 632만원 더 받는다. A씨가 더 받는 금액의 34.3% 수준이다. B씨가 정기적으로 받는 돈이 상여금과 휴가비뿐이어서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할 경우 전체 근로자의 12%인 300인 이상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은 1인당 평균 749만원을 받는 반면, 비정규직은 11만원에 불과해 수혜액 차이가 70배에 달한다.

최저임금도 손질 … 대폭 오를 듯

 최저임금법도 손질 대상에 올랐다. 최저임금에 경제성장률과 물가인상률을 반영하는 방안 또는 근로자 평균 정액급여의 50% 수준으로 올리는 내용이다. 현재 최저임금은 상용직 근로자 평균임금의 37% 정도다. 정부 의지는 더 강하다. 고용노동부는 조만간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사업주에게 징벌적 배상을 물리는 개정안을 내기로 했다. 정부는 이미 이런 기조를 실행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 최저임금을 7.2% 인상하면서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근로자의 소득 분배 개선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한 대로다.

 저소득층의 임금을 올리려는 정치권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포괄임금제 폐지가 논의 대상에 더해졌다. 포괄임금제는 기본급에 연장근로수당 같은 일부 법정수당을 합한 금액을 계약에 따라 매월 나눠서 지급하는 제도다. 연장근로나 야간근로를 해도 임금이 변하지 않는다. 최근 전남 목포시와 환경미화원 간에 갈등을 빚고 있는 것도 포괄임금제 탓이다. 목포시는 “수당을 대폭 간소화해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임금체계”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부 목포시 의원과 노동계는 “노동자 자유이용권”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연구위원은 “포괄임금제를 법으로 금지하고, 연장근로에 따른 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각종 임금제도들은 고임금을 지향하면서 임금격차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노총 이정식 중앙연구원장은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안 갖춰진 상태에서 장시간 근로로 임금을 보전하는 것은 일할 의욕을 떨어뜨리게 된다”며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는 임금정책은 선진국형 고임금 고생산 구조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평했다.

인건비 부담에 일자리 줄일 우려

 그러나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고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중소기업은 신규채용 중단이나 생산손실, 고용의 질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사회정책본부장은 “현 정부 임기 중에 시행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기업으로선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다”며 “늘어나는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결국 생산성을 높여 소수의 인력으로 기업을 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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