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대불의 투자로의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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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부실기업에 대한 산은의 차관대불을 투자로 전환시키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어 그 타당성여부가 크게 문제될 것 같다.
인천제철에 대해 재무부는 1백억원의 신규투자를 지시했다 하는데, 신규투자의 내용은 67억원의 외채 상환조와 33억원의 내자 상환조로 구성되어 있다.
만일 이 보도가 사실이라 한다면, 이 계획은 산은이 기왕 대불 했거나 회수할 수 없는 여신 1백억 원을 투자로 전환시켜 금리 배담이나 경감시켜주자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성질의 투자는 지난 3월에도 60억원이나 한국철강에 주어졌다하며, 거대한 차관기업과 은행간의 관계를 이 두 기업체들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할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지난날 이른바 부실기업정리작업에 착수할 때 착상한 융자의 투자전환방식을 이제는 그대로 차관 지보대불에도 확대 적용케 하려는 것이라 하겠다.
확실히 내자금리도 제대로 부담하지 못하는 부실기업들이 차관원리금 상환을 감당할 수 있을리는 만무한 것이며, 은행이 지불보증 한 이상 차관대불부담이 일어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당국이나 은행으로서는 대불을 일으킬 부실기업에서 도저히 금리를 받아낼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게 될 때, 자칫 기왕 잘못된 일의 책임이라도 교묘하게 회피하는 방법을 강구해 보겠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이며, 그 탈출구가 바로 융자의 투자전환이라 할 수 있다. 즉 융자나 대불로 남아 있는 한 이자가 계속 발생하게 되고 미수이자회수에 대한 책임과 부실기업에 대한 계속적인 여신 및 지보책임은 어차피 은행과 차관허가당국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투자로 전환시키면, 주식배당금이 문제될 것이지만, 배당금이 적거나 없다고 해서 책임추궁이 가해지지는 않는 것이 관례이다. 때문에 그동안 부실기업정리라는 미명하에 그러한 조작이 성행되어 왔는데, 이러한 무책임한 방법이 부실기업의 건전한 정리방안이 될 수 있겠는지 당국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인천제철이나 한국철강은 휴업상태에 있는데 이러한 기업에다가 증자 조치를 해서 은행 계수나 깨끗하게 만들어 가지고 부실기업이 정리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지 당국은 국민에게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어차피 자금회수를 할 수 없는 기업체이고 보니, 계수나 정화시켜 책임추궁이나 면해보려는 계산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 부실기업을 다루는 이상, 금융을 정당화한다는 정책과제는 스스로 무색한 것이 되고 말 것임을 당국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은행이 여신금리로 운영되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라 하겠는데, 여신을 무배당 주식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은 결국 업체의 부실화를 은행의 부실화로 호도 시키는데 불과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리를 이와 같은 각도에서 판단한다면, 오늘날 금융기관이 내포한 모순을 근원적으로 정리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을 맞이했다 할 것이다. 즉 그동안 잘못된 것을 전부 들추어내어 책임을 물을 것은 묻고, 결손처분 할 것은 대담하게 이를 처리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앞으로 무책임한 차관이나 여신을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관계책임자가 응분의 처벌을 받는다는 전례가 생겨 경영합리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모순을 덮어두고 이를 어물쩡하게 수습하면서 금융질서의 정상화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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