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버」운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크롬웰」의 시대에 그에게는 「덜로」(Thurloe)라는 심복이 있었다. 그는 이를테면 당시의 정보·수사관계 총책임자였다.
「크롬웰」이 죽고 1660년에 왕정복고가 이루어지자 「크롬웰」의 측근은 모두 처형되었다. 그들이 축적했던 재산들도 모두 몰수된 것은 물론이다.
당연히 「덜로」가 제일먼저 처형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만큼 왕당파의 증오와 원한을 많이 받은 인물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은 오히려 편안한 여생을 지낼 수 있었다. 그는 왕당파의 비밀을 너무나도 많이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를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면의 조건으로 입을 다물기로 했다.
지난 l일, 미국의 FBI(연방수사국)국장 「에드거·후버」가 죽었다. 그가 48년간 FBI와 함께 있는 동안에 8명의 대통령이 바뀌었다.
그 사이에 그는 완전한 「언터처블」(불가촉의 인물)이 되고 말았다. 어느 대통령도 그를 견제할 수 없었다.
그만큼 마음에 걸리는 비밀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닐 것이다. 역시 견제할 필요가 없을 만큼 「후버」가 일을 잘 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FBI자체는 그가 쌓아올렸던 왕년의 영광을 이미 많이 다른 「라이벌」기관들에 빼앗기고 있다.
요새는 미국의 비밀정보활동의 중심은 국내만을 다루는 FBI보다도 CIA(중앙정보국)이다. CIA는 매일같이 대통령에게 검은 표지의 극비정보보고서를 보낸다.
몇 해 전 「풀브라이트」상원의원의 요구에 따라 CIA의 관리위원회에 상원외교위원들이 끼게 되었다. 그러나 CIA의 권한을 깎으려는 1백50회 이상의 시도중 단 한번이라도 성공을 거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언터처블」한 것이 정보기관들이다.
이 밖에도 국방총성의 NSA(국가안전보장국), DIA(국방정보국), AEC(정부원자력위원회) 핵기술정보국, 국무성소속의 INR(정보연구국), G2(육군정보부), A2(공군비밀정보부), ONI(해군정보부) 등이 있다.
이들 기관이 쓰는 연간예산은 대충 30억「달러」가 넘는다. 그리고 이들의 대표자들이 USIB(미국가정보회의)를 구성하고 매주 한번씩 CIA가 있는 「란그레」의 장관실에서 회의를 연다.
이들이야말로 오늘의 「언터처블」들이다. 암흑가와 싸우던 「후버」의 시대는 완전히 지난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