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선풍 후의 은행 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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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시중 은행의 71년도 하반기 결산주주총회를 계기로 일어난 전례 없는 대인사 파동은 28·29일의 국책은행인사를 고비로 일단락 된 셈이다.
이번 인사파동의 성격은 정부가 추진하려는 이른바 금융쇄신작업을 중간평가 하려는 것이라 하겠으며, 앞으로 금융기관의 나아갈 길을 암시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당국의 의사에 따라 일사천리 격으로 진행될 이번 인사조치는 ①은행장을 가급적 경질하지 않고 ②당무 및 감사를 대폭 경질하고 ③감사를 외부에서 기용한 점 등 세 가지 특징을 가졌다. 이런 점에서 당국의 포석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를 추정하기는 그다지 힘들지 않다.
첫째, 은행장의 경질을 보류하고 상무 및 감사를 대폭적으로 바꾼 것은 금융정상화작업의 책임을 전적으로 은행장에게 귀속시키겠다는 뜻을 암시하는 것이다. 재무당국이 행장이 작성한 고과 표에 따라서 인사조치를 단행했음을 널리 「피아르」하고 있는 이유도 그런데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은행장들은 문제점이 노출될 때마다 수시로 경질될 수도 있을 것임을 이번 인사는 예고하는 것이라 하겠으며, 앞으로 중앙은행과 재무당국자 스스로는 시은의 부실경영에 관한 책임문제에서 발을 뺄 수 있는 편리한 계기를 마련해 놓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책임문제를 따지는 경우, 새로 취임한 임원들이 과거의 누적된 모순까지도 포함해서 책임지는 것이냐, 아니면 새로 발생하는 부실요인에 대해서만 책임지느냐 하는 점을 당국이 분명히 해주지 않는 한, 아무리 유능한 경영층이라 하더라도 조만간 다시 책임질 일이 생길 것이다.
둘째, 은행부실화의 책임을 상무 급에 물은 것이 되어 버린 이번 인사조치는 어느 의미에서는 본말이 뒤바뀐 것이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솔직히 말하여 그 동안의 금융관행으로 보면, 이사회란 유명무실한 존재였으며 상무 급의 권한과 책임도 또한 너무 미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금융관행을 전제로 한다면, 심부름꾼만 문책한 격의 인사가 아니었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며, 때문에 은행장들에게 기회를 한번 더 주기 위하여 상무 급을 경질한 인사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셋째, 이번 인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시은감사에 정년 배후의 한은 인사를 기용했고 국책은행 감사에는 재무부 직원을 소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감사의 외부기용은 은행인사의 편협한 파벌적 경향을 견제한다는 뜻에서는 명분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감사의 외부기용과 그 권한의 강화에 따른 문제점을 당국은 시급히 조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특히 시중은행의 경우, 상법상의 회계 감사 권을 확대하여 사전업무감사까지 할 수 있게 하는 경우, 법률적인 모순이 발생할 것도 분명하므로 이를 합법화시킬 법적 조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모 감사는 법률적으로 독립기관이라 하겠는데, 집행부를 사전에 감사할 때 생기는 마찰과 권한 및 책임한계를 당국이 사전에 분명히 해주지 않는다면 큰 혼란을 빚을 우려가 있다.
예컨대 감사가 「비토」한 것을 은행장이 집행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감사의 감사를 받은 사안에 대해서는 은행장이 면책되는가 하는 문제 등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업무 집행상 많은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끝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은행경영의 자율성을 당국이 확실히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각 금융기관의 여신행위에 외부로부터 무시 못할 압력이 가해질 여지가 남아 있는 한, 부실의 책임을 은행임원들에게만 묻는다 해서 금융이 정상화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폭적인 인사조치로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차제에 당국은 금융환경을 근본적으로 정화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를 해결하여 명실상부한 금융정상화의 계기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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