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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어린이집 최우수 평가 받은 전국 41곳 비결 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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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전주 빛뜨란어린이집 아이들이 15일 이혜경 원장(맨 오른쪽)과 전주천에 나왔다. 부모가 얼굴 공개를 원치 않는 아이는 모자이크를 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올해 영·유아 무상보육이 시작됐지만 학부모의 만족도는 높지 않다. 본지는 지난 5월 서울 송파구 어린이집 비리를 보도한 것을 시작으로 네 차례에 걸쳐 영·유아 보육과 초등학교 1~3년생의 방과후 돌봄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번에는 보육·돌봄기획의 마지막 편으로 보건복지부의 최우수 평가를 받은 어린이집을 분석해 전체 어린이집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찾아봤다.

매일 부모와 통화 … 동네의사, 주치의 지정

음식 구입일 스티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유은영(34·여)씨는 20개월 된 딸을 집 근처 벧엘어린이집에 보낸다. 지난 15일은 유씨가 먹거리 검사 당번을 하는 날이었다. 오전 11시50분 유씨가 앞치마에 위생모자를 쓰고 어린이집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오전 간식(찐 감자)에 쓰고 남은 감자와 당근·양파가 따로 지퍼백에 담겨 있다. 노란 스티커에 구입 날짜(감자는 11월 15일, 당근·양파는 11월 13일)가 표기돼 있다.

 이어 유씨는 야채와 육류·생선용 도마와 칼을 따로 쓰는지, 싱크대 서랍 위생 상태를 확인했다. 야외활동 나간 아이들이 들어오자 같이 점심을 먹으며 식사의 질을 확인했다. 유씨는 “냉장고에 든 음식에 유통 이력이 다 표시돼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의 안전 사고나 일탈 행위가 끊이지 않지만 학부모 신뢰를 받는 곳도 적지 않다. 본지는 올해 보건복지부의 평가 인증이 완료된 5814개 어린이집 중에서 평가 점수가 높거나(전국·서울 각각 상위 20위 이내), 모범시설로 정부 표창을 받은 41곳의 운영 상황을 분석했다.

 그 결과 7가지의 비결이 드러났다. 최우수 시설은 전담조리사가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주치의를 두고 있으며 위생과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외부 체험활동 ▶우수 교사 ▶SNS 등을 이용한 부모와의 긴밀한 소통 ▶체계적 교육(인성교육·칭찬 등) 등의 특성이 나타났다.

 최우수 시설 41곳 중에선 가정어린이집과 민간어린이집이 29곳으로 가장 많다. 국공립과 직장어린이집은 각각 6곳이다. 민간·가정 어린이집이 가장 문제를 많이 일으키지만 전체 숫자가 많다 보니 최우수시설도 많다. 한국보육진흥원 조용남 평가인증국장은 “국공립만 우수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민간·가정 어린이집에 우수시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최우수 시설들은 무엇보다 먹거리 안전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서울 노원구 나연어린이집은 매일 친환경 재료 위주로 장을 보고 냉장고를 학부모들에게 공개한다. 서울 금천구 해누리어린이집은 식사·간식 사진을 매일 홈페이지에 올린다. 이곳과 벧엘, 서울 성북구 예원어린이집은 전담 조리사를 두고 있다. 39인 이하 소규모 시설은 전담 조리사가 의무 조항이 아니다.

 해누리어린이집에 37개월 난 아들을 보내는 조순임(39·여)씨는 “원래 가정어린이집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폐쇄적이기 때문인데 이곳은 뭘 먹이는지, 어딜 다니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려준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 어린이집은 지난 13일 기자가 사전 연락도 없이 방문하겠다고 요청했지만 꺼리지 않고 이를 허락했다. 학부모나 구청 담당자 등 누구에게도 개방돼 있다고 한다.

수건걸이에 개별 사진, 위생 철저히 관리

이 어린이집은 수건걸이에 사진을 붙여 수건이 섞이지 않게 한다.

 안전 관리는 필수다. 경기도 파주시 동문아트어린이집은 전기 콘센트를 애들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으로 옮겼다. 전북 전주시 빛뜨란어린이집은 날마다 집에서 가져온 개인 수건을 쓴다. 수건걸이에 애들 사진을 붙여놓고 섞이지 않게 한다. 서울 은평구 뉴타운어린이집은 인근 동네의원 의사를 주치의로 선정해 주기적으로 손 씻기 등의 위생교육을 한다.

 외부활동으로 자연친화적인 텃밭 일구기를 하는 곳이 많다. 전북 전주의 빛뜨란어린이집은 5년 전 아파트관리소의 허락을 받아 화단을 텃밭으로 개조했다. 이혜경 원장은 “어린이집 바로 앞에 있어 자주 나가고 아이들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올해 평가인증에서 유일하게 100점을 받은 제주동광어린이집도 제주시의 지원을 받아 10분 거리에 텃밭을 운영한다.

교사, 아이에게 존댓말 … 배려 등 인성교육

 아동학대·안전사고의 원인이 교사인 경우가 있다. 하지만 최우수 시설들은 1급 보육교사(2급 취득 3년 후 승급교육을 받은 교사)를 많이 두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뉴타운어린이집(은평구)과 벧엘어린이집(노원구)은 원장을 포함해 4명 중 3명이 1급 자격증 소지자다. 지난해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어린이집 4942곳의 1급 교사 비율은 35.1%에 불과하다. 익명을 원한 한 어린이집 원장은 “2급 교사가 못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1급 교사가 많으면 보육의 질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아이와 상호작용도 중요하다. 지난해 평가인증에서 만점을 받은 서울 은평구 경남어린이집 김경미 원장은 “아이들끼리 싸워도 절대 반말로 혼내지 않는다”며 “자연스럽게 주의를 다른 곳으로 유도하면 싸우던 아이가 돌아앉는다”고 말했다.

 성품이나 인성교육으로 특화하는 곳도 있다. 전북 전주시 동현어린이집은 5주마다 배려와 경청 등을 주제로 인성교육을 한다. 엄마는 물론 아빠까지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한다. 김미옥 원장은 “영·유아 시기는 인성이 만들어지는 때이므로 무엇보다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의 대웅 리틀베어어린이집(직장)은 유아반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면서 밥상머리 교육을 하고 있다. 부모와의 소통도 기본이다. 경기도 화성시 해봄어린이집은 교사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부모와 통화한다.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으로 시간을 맞춰 전화 상담을 한다. 이주영 원장은 “마음과 마음이 전해지기 위해서는 서로 대화를 많이 하고 얘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선생님들도 처음엔 힘들어하지만 오히려 나중엔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평가인증제=안전하고 질 높은 보육을 제공하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어린이집을 평가해 인증하는 제도. 자발적으로 원하는 어린이집만이 대상이며 ▶보육환경 ▶운영관리 ▶보육과정 ▶상호작용과 교수법 ▶건강과 영양 ▶안전 등 6가지 영역으로 나눠 평가한다. 100점 만점에 영역별로 75점 이상이면 인증받을 수 있다. 평가인증 점수와 세부 내역은 평가인증 알리미 사이트(info.childcare.go.kr)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된다.

◆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김혜미·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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