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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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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식과 청명 날은 옛날에는 퍽 즐거웠었나 보다.
『흐르는 비 소리에 티끌 꿈 깨이 거다. 청려장 둘러 짚고 앞 외에 올라가니 잔디마다 속잎이요, 포기마다 꽃이로다….』누가 작자인지도 모르는「전원사시가」엔 이런 귀절이 있다. 이 무렵이면 산에는 꽃이 만발한다.
왜 철쭉, 진달래, 정향 꽃, 월계, 함박 꽃, 삼색도화에 영산홍, 산단 화, 옥잠화에 이화, 도화, 매화….
이런 꽃동산 속에 소박한 묘가 잠자고 있다. 따스한 봄볕이드는 남향만에…. 조막손으로 무덤 위의 띠를 매만지는 어린이들의 입에서 노래가 절로 튀어나온다. 그게 할아버지의 무덤이라 치자. 그럼 어린이는 땅 속의 할아버지와 즐거운 숨바꼭질놀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새 이런 게 모두 제화의 세계로 되어버렸다. 그토록 많던 꽃들이 보이지 않는다. 숨어 피는 것일까. 나무도 흔하지 않다.
오늘은 마침 식목일. 올해가27년째라니 그 동안 무던히도 나무를 심어 나간 셈이다. 그런데도 꽃동산, 푸른 동산이 없는 건 도시 무슨 까닭일까.
한식 때가 즐거운 까닭은 또 있었다.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요 소루쟁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이 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농가월령가」한 귀 절이다. 절로 군침이 돌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소박한 식성을 우리는 이제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다. 입맛을 잃은 때문일까. 아니면 육식에 맛들인 탓일까. 또는 솔가지 울타리가 「블록」담이 되고, 초가 벼 지붕이 「슬레이트」지붕으로 바뀐 시골에서 시골 냄새가 전혀 가신 때문일까.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의 시에 이런 게 있다.
『담 너머 하늘빛 빨갛게 물들면, 저녁 연기 자오룩이 피어오르고, 한식이라 동풍에 물빛도 맑아라. 오가는 상가배, 나그네 말하기를 꽃 피는 이 시절이 고향 제일 그립다고.』그런 고향이 이제는 없다. 어디를 가나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그저 부산하게 바쁘기만 한가운데 명절의 즐거움은 어느덧 잊혀져만 가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몹시도 바빠져야 할 절이기는 하다. 한식은 동지에서 꼭1백5일째 되는 날. 봄갈이를 시작하고 밭에 파종을 하고, 어린이들도 꽃동산에서 놀고만 있을 순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우로에 감창함을 사과로나 펴오리라』는 노래도 있지만, 사과 만으론 달랠 길 없는 아쉬움은 남는다.
오늘은 공휴일. 한식·소명이라서 가 아니라 식목일이라 서란다. 세월도 바뀌고 마음도 바꾸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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