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회학연구는 신소설작가 이인직이 그 시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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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의 사회학은 신소설의 작가 이인직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주장이 최근 김영오 교수(중앙대)에 의해 소개됐다. 김 교수는 근저 『한국사회학』에서 『우리 나라에 있어서는 1906년에 이인직의 사회학에 대한 체계적인 논술을 잦아볼 수 있는데, 그는 사회 단체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이 사실을 학계에 제시한 것.
비록 그 이전인 1895년에 전길준의 『서유견문』에서 인신학과 빈원에 대한 논술이 사회학과 사회습지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찾아낼 수 있게 하는 것이나 역시 체계적인 사회학의 소개는 이인직이 『소년한반도』제1호(1906년)에서 했다는 설명이다.
그후 1930년에 김현준의 『근대사회학』과 1933년에 한치진의 『사회학개론』이 발간돼 전통적인 사회학의 개념이 소개되고 이들은 응용사회학으로서도 강조했다는 것. 그후 해방후 지금까지 발간된 사회학의 개설서는 19권이지만 거의 구미 또는 일인의 견해가 소개되고 소설가 제 나름의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오귀스트·콩트가 1백30여년 전인 1839년 실증철학강의에서 사회학이란 개념을 처음 사용한 후 사회학은 사회과학의 한 분과학으로서 출발, 오늘날 사회과학의 기초과학으로서, 또 전문과학으로서 크게 개화됐다.
세계적인 조류는 종합사회학에서 형식사회학으로 다시 문화사회학으로 발전했고 유럽의 진화론적 사회학에서 미국의 심리학적 사회학, 이어 행동론적 사회학으로 이행됐었다.
이와 비슷하게 이인직은 종합 사회적 입장에서 사회학이론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면서 한말의 현대적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과학으로서 소개했다.
그러나 한일합병 이후엔 일제의 식민지교육정책으로 말미암아 주체적인 근대학문의 발전이 막혀 버렸다.
그러나 일제 때 나온 김신준과 한치진의 저고는 근본적이기보다 구미의 사사학 전통을 이어받아 우리 나라 사회구조와 사회문제의 분석에 유용한 도구로서 토착화하려는 흔적이 있었다고 김 교수는 해석한다.
해방후엔 오히려 일제식민지교육의 영향이 두드러지고 서구의 학문적 전통과는 일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게 됐다는 것.
그러나 1957년 한국사회학회가 창설되었을 때까지는 유럽의 종합 시사회학의 영향아래서 사변적 연구가 활발히 전개됐고, 58년 이후 64년까지에는 미국사회학의 압도적 영향하에서 사회조사방법이 도입되고 이런 방법에 입각한 조사연구들이 종래의 사변적 성격을 지닌 연구의 지지부진함을 압도하고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미국적인 조사방법을 주축으로 한 사회학이 한국사회학계를 석권함으로써 문제가 생겼다고 그는 주장한다.
『종래의 이론적인 사변적인 것 내지 철학적인 것을 배격하고 우리의 사회현상을 무비판적으로 조사방법에 의해 양화 시켜 고찰하려는 경향이 성행하는 것』이 문제거리라는 것이다.
65년이래 사회조사방법자체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한국의 사회현상을 가장 주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독자적인 방법론을 모색하게되면서부터 급격한 사회변동기에 있는 한국사회의 독특한 모든 현상들을 분석하는데는 양화방법만으로 이해될 수 없는 많은 문제점이 자각되었다.
따라서 김 교수는 사회학의 양대 방법론, 즉 사회안정에 깊은 관심을 갖고있는 미국적인 균형이론과 사회갈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유럽 적인 갈등이론이 각기 사회구조의 규범적 측면과 제도적 측면을 강조하는 점을 주지하고 이들 방법론을 연구대상과 연구과제의 성질에 따라 적절히 배합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균형이론이 정태적이고 개인행동중심이고 그 양화방법은 가설과 이론을 실증하고 검증하는 경험적이고 귀납적인 이론구성방법이 특징이지만 사단조직의 동태적 측면, 내부의 질적 변화에 관한 연역적 이론구성방법인 갈등이론을 도외시 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그는 이 양자의 합일점에서 주체적인 한국의 사회과학의 모색이 오늘의 시점에서 요청된다고 주장하고 있다.<공종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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