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소조 정치 … 마오쩌둥처럼 게릴라식 개혁 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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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소조(小組·태스크포스) 정치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많다. 지난 12일 끝난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3차회의(3중전회)에서 신설하기로 한 ‘중앙 전면심화개혁 영도소조(中央全面深化改革領導小組)’가 대표적이다. 절대 권력을 가진 당이나 국무원(행정부), 혹은 군의 조직도 많은데 하필 소조를 만들어 개혁의 대임을 맡기는 걸까. 여기에 중국식 ‘소조의 통치학’이 숨어 있다.

 우선 2020년까지 중국 제2세대 개혁을 주도할 이 영도소조는 조직과 권한, 개혁의 영역 면에서 전례 없이 강력하고 광범위할 것으로 보인다. 조장은 시 주석이나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맡을 전망이다. 시 주석은 3중전회에서 신설이 결정된 ‘국가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을 것이 확실해 두 권력조직을 모두 장악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 중국정치는 집단지도체제로 권력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지만 최근 시 주석이 부패척결 등을 주도하면서 권력 장악이 예상보다 폭넓고 빠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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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도소조의 개혁 범위는 경제와 정치, 문화, 사회, 생태문명, 국방군대 등 6개 분야 15개 영역 60개 항목에 달한다. 지금까지 경제에 집중됐던 개혁이 전방위로 확산된 것이다. 현재 중국 개혁은 거시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국무원 소속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가 맡고 있다. 따라서 당 산하 영도소조가 신설되면 개혁의 중심이 국무원에서 당으로 이동하고 발개위 역시 산하 조직으로 흡수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직은 중앙에 영도소조를 두고 6개 분야별, 지역별 산하 소조가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北京)시는 13일 이미 당 상무위원회 확대회의를 열어 ‘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를 구성하기로 했다.

NSC와 함께 두 개의 권력조직 장악

 소조가 개혁의 상징이 된 이유는 그 효율성과 파급성 때문이다. 국무원과 당의 특정 조직이 맡을 경우 수천 개에 달하는 부처 장악이나 조직 간 알력은 물론 협의에도 시간이 오래 걸려 효율성과 신속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도 국가 최고지도부인 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전원이 21개 소조의 조장이나 부조장을 나눠 맡아 통치에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시 주석이 조장인 ‘중앙 외사영도소조(中央外事領導小組)’다. ‘중앙 국가안전공작 영도소조’를 겸하고 있는 이 조직은 국내외 안전과 외교정책을 결정한다. 군과 외교, 공안, 경제 부처 지도부가 모여 대내외 관련 국가정책을 신속하게 결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9월부터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둘러싸고 일본과 분쟁이 일자 중국 군함과 항공기의 센카쿠 열도 순시 정례화, 일본 군함에 대한 레이더 조준 등 결정을 신속하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 총리는 ‘중앙 재경영도소조(中央財經領導小組)’ 등 6개 소조 조장을 맡아 국무원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소조는 집단지도체제인 중국 지도부의 국가업무 관장 범위를 규정하는 역할도 한다. 시 주석이 대만 문제를, 리 총리가 경제 외에도 교육과 문화정책을, 장더장(張德江)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홍콩과 마카오 문제를, 위정성(兪正聲) 정치협상회의 주석은 신장(新疆)과 티베트 등 민감한 소수민족 문제를 각각 맡고 있다. 각각의 소조가 사실상 관련 정책의 최고 결정권자다.

 소조는 상설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사안이 생길 경우 모여 신속하게 결정을 하고 결정사항을 관련 부처에 전파해 실행을 독려하고 감독한다. 따라서 대부분 소조가 고정 사무실이 없고 소조의 위원 역시 사안과 상황에 따라 변한다. 다만 소조의 업무를 챙기고 개혁 실행 여부를 감독할 최소한의 조직만 운영한다. 소조에서 결정되면 당 중앙의 각 부(部) 위원회 상위 부서 결정으로 인정된다.

경제 넘어 사회 전 분야로 개혁 확대

 소조는 1958년 공산당이 재정과 정법·외사·과학·문교 등 5개 부문 소조를 만들어 정부와 당 기구 정비에 나선 게 그 효시다. 당시 소조 설립 목표는 ▶상설 조직이 하기 어려운 임무를 완수하고 ▶부문별 종합 자원을 각 조직에 제공하며 ▶기구 간, 부문 간 소통을 원활히 하는 것 등 3가지였다. 현재의 소조 존재이유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 뿌리는 훨씬 깊어 마오쩌둥(毛澤東)의 유격전에 닿아 있다. 국민당과 항일투쟁 과정에서 마오는 정규전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고 보고 게릴라 전법을 활용해 모두 승리했다. 당시 마오의 유격비법, 즉 16자결(十六字訣), 즉 적이 공격하면 후퇴(敵進我退), 적이 멈추면 교란(敵駐我擾), 적이 피로하면 공격(敵疲我打), 적이 후퇴하면 추격(敵退我追) 전법은 지금도 공산당과 중국군의 전술 근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진핑이 현재 반(反)개혁 세력의 뿌리가 깊고 강하다고 보고 급진보다는 단계적이고 장기적으로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반개혁 세력에 맞서 단계·장기전 예고

 개혁·개방 노선을 도입한 78년 이후에는 경제 개혁을 위해 소조가 집중적으로 신설됐다. 86년 만들어진 ‘국무원 무역체제 개혁영도소조’는 중국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지원 제도와 정책을 마련했고, 94년 구성된 ‘국무원 외환체제개혁협조 영도소조’는 인민폐의 대외 고정환율 골격을 만들었다. 비상설 조직인 소조의 권한이 막강하다 보니 기존 정부나 당의 조직과 마찰이 빚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 7월 재정부와 세무총국, 은행감독위원회 등이 리 총리가 조장으로 있는 ‘중앙 재경영도소조’가 주도해 결정한 ‘상하이 자유무역구’ 설립안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 좋은 예다. 경제 현장 감독기관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당시 리 총리가 탁자를 내리치며 분개해 그대로 통과됐다.

 장줘위안(張卓元) 사회과학원 학부위원장은 “영도소조는 방대한 중국의 각 조직에 대한 효율적인 개혁과 관리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며 특히 이번처럼 경제 한 분야가 아닌 국가 전 분야로 확대된 개혁의 성공을 위한 당 중앙의 결심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마오 동상 존경 소조까지 … 전국 영도소조 수백만 개 추정

영도소조는 보통 국가나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급 지도자가 조장을 맡는 소조를 말한다. 그러나 요즘은 중국 전역에서 이 소조를 모방하고 있다. 후베이(湖北)성 샹양(襄陽)시는 최근 시내 중심부에 있는 재래 시장을 외곽으로 이전하기 위한 ‘시장이전 영도소조’를 만들었다. 이해 당사자 간 충돌을 조정하기 위한 일종의 중재 조직이다. 마오쩌둥의 고향인 후난(湖南)성에는 ‘마오 동상 존경 영도소조’가 있다. 관내에 있는 마오 사진이나 동상 훼손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만들었다.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시에는 ‘교통사고 예방 영도소조’도 있다. 시정부 교통국 관계자가 참여하는 이 소조는 시민들과 함께 사고 다발지역에서 사고예방 캠페인을 주도한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자국 영도소조가 수십만~수백만 개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도 한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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