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이레」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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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영국은 24일 50여년 전의「에이레」분할이래 한때도 가라앉을 줄 모르고 간헐적으로 지속됐던 북「에이레」내의 유혈사태를 종식시키고, 사태의 근본적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한 조치로 앞으로 1년 동안 북「에이레」를 직접통치하기로 결정했다.
영 연합 왕국의 일부로 남게된 북「에이레」에서 다수파를 이룬 신교도들과 소수파인 「가톨릭」교도들 사이에는 폭력사태가 그칠 새 없었으며 특히 69년8월 양파시민들이 서로 유혈충돌을 벌인 후로는 영국군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폭탄투척, 방화, 저격사건의 연발로 2백80여명이 목숨을 잃고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를 초래했었다.
「가톨릭」소수파 교도들은 북「에이레」의 행정과 입법기관이 신교도 다수파의 권익만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데 대해 다수파 신교도들은 「에이레」공화국과의 궁극적 합병을 꿈꾸는 「가톨릭」교도의 「획책」에 대처하는 보장 책으로 행정·입법권의 사실상의 독점을 고수해왔다. 이런 상황하 신교도 강경우파의 요구를 외면하고서는 존속할 수 없던 역대 북「에이레」행정부와 그 입법기관이 계속 소수파의 권익을 도외시했던 것이며 이에서 파생된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끊임없이 소수파「가톨릭」교도들의 불만을 격화 시켜왔던 것이다.
북「에이레」수상 「브라이언·포크너」의 두선 임자인 「오도넬」과 「치체스터·클라크」전수상도 이러한 불평등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경주했었으나 신교도 강경우파의 반대에 부딪쳐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포크너」 수상자신도 강경우파의 반발을 우려, 「히드」수상과의 협상에서 질서유지 및 보안책임의 영국이양을 거부한데서 「히드」수상의 보수당정권은 직접 통치라는 수단에 호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히드」수상이 이번 조치를 발표하면서 『북「에이레」정부에 다수파뿐 아니라 소수파(「가톨릭」교도들)의 항구적 참여도 확보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라고 밝히는 한편, 정세가 허락하는 대로 가급적 단 시일 안에 북「에이레」장차의 정치체제에 관해 각계각층과 협의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소수파의 권익보장을 공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이 열매를 맺어 양파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이 이번의 직접 통치기간 사이에 마련되기를 바라고 싶다.
북「에이레」의 행정·입법권을 영국의회에 이관하고 북「에이레」담당 국무 상을 임명 취임케 하는 데에는 북「에이레」의 자치권을 보장한 현행법의 개정 등 입법조치가 필요하나 야당인 노동당의 적극 찬성도 있고 해서 별 난관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히드」수상이 소수파의 참정권보장공약과 함께 「에이레」공화국과의 합병여부를 국민투표에 붙이기로 한 것은 종다수 원칙을 확인하는 동시에 다수주민의 동의 없는 「에이레」 공화국과의 합병을 배제한데서 양파에 설득력 있는 결과를 가져올 것도 기대된다.
그러나 소수파 「가톨릭」교도들의 『군사적 「백본」을 이뤄온 불법화된 『「에이레」공화군』의 급진 「프러비저니스트」들과 신교도들이 영국의 직접 통치 안을 즉각 거부한 것은 앞날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안겨준다.
특히 영국의 이번 정치적 「이니셔티브」를 자기들의 폭력행동이 주효한 것으로 보고 있는 「에이레」공화군「테러」분자들이 가일층 사태를 악화시키거나 호전적 신교도들이 「배신」이라고 규탄한 「히드」정권의 조치에 반발, 「가톨릭」교도들과의 실력대결로 나선다면 북「에이레」는 더욱 걷잡을 수 없는 혼란상태에 빠질 우려마저 보인다. 양파는 이성과 냉정을 되찾아 공존적 타결 책을 마련하여 20세기후반의 지금에 와서 종교분쟁으로 유혈사태를 빚는 치욕은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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