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의 나라 스페인에|미니 민주공화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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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만년 독재의 아성이라 일컬어지는 스페인에 미니 민주공화국이 있다. 이 공화국의 이름은 벰포스타 어린이 공화국. 스페인 서북부 「갈리샤」주의 소도시 오렌세의 교외 15만평방미터의 터에 자리 잡은 이 미니 공화국은 4세 내지 20세의 불우한 고아들 2천여명으로 이루어져 순전히 이들의 손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식 국명은 「무차초스」국으로 붙여진 이 장난감 같은 공화국은 의회에서부터 극장·호텔·식당·쇼핑·센터 등 골고루 갖춰져 있는데 외부 인사가 출입하려면 입국 비자 (?)를 미리 발급 받아야 하며 소년 경찰관으로부터 엄격한 조사까지 받는다.
이들은 또 자기네만의 화폐를 사용하여 외부에서 자신들의 서커스나 주유소 등에서 벌어들인 돈을 자기네 화폐로 바꾸어 두기도 한다.
이들이 공화국 통치자들을 선출, 누구나 시장이나 각 행정 부서의 장관이 될 기회가 주어진다. 이들은 매일 모여 회합을 갖고, 그날 그날의 문제를 토의하여 결정을 내린다. 이 결정에는 이들을 지도하는 성인과 교사를 제외하고는 2천여명의 어린이 공화국 전원이 참여한다.
이 공화국의 어린이들은 다른 스페인 어린이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전을 누리고 있다. 즉 가톨릭 교회에서 주관하는 대부분의 각급 학교에 다니려면 일반 스페인 어린이들은 한달에 3백∼6백 페세타 (1천5백원∼3천원)의 수업료를 내야하나 이 공화국 어린이들은 자체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어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료로 배울 수 있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때까지 마음껏 공부할 수 있다.
처음 이 공화국은 57년 26세의 「실바·멘데스」 신부가 15명의 고아를 모아 가르치면서 시작됐다. 멘데스 신부는 이들 어린이들에게 휴지나 빈병 등 폐품을 수집, 판매하여 이들의 자립 정신을 키워주는 한편 자선 음악회 등을 열어 재원을 마련했다.
처음에는 오렌세 지방의 고아들만을 모아 운영하던 멘데스 신부의 고아원이 성과가 오르자 스페인 각지의 고아들이 모여 지금과 같은 모범 민주 공화국이 됐다. <슈피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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