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한 제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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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에게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건강 색이 넘치는 얼굴에, 훤칠한 키에, 건장한 체구의 사나이. 금테를 두른 모자를 쓰고, 어느 구석을 보아도 주름살 하나 잡히지 않은 제복을 입고 있다. 제복의 소매에도 금테가 둘러 있어서, 사뭇 근엄한 관록마저 풍겨준다. 그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하고 있는 모습은 그럴 수 없이 멋이 있다. 모든 항공 회사의 광고는 으례 웅장한 여객기의 자태와 함께 그 멋장이 커맨더 (기장)와 파일러트 (조종사)들의 면모도 소개하고 있다. 말하자면 기계와 인간의 이상적인 하머니 (조화)를 과시해 보이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셍텍쥐페리의 소설을 보면 파일러트는 그가 조종하는 비행기의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혈맥이 연결되어 있는 듯한 일체감을 느낀다. 파일러트는 비행기의 한 부분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바로 그들이 깍듯하게, 절도 있는 제복을 입고 거기에 금테를 두르고…하는 것은 그 「분신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그들이 허술한 잠바나 입고, 게다가 지퍼를 풀어헤친 채, 두발을 흐트러뜨리고 멍청히 서 있다면 안심하고 그 비행기를 타려는 승객은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들의 제복이나 용모나 몸짓은 직책의 도덕적인 위엄도 함께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신용을 직책의 생명으로 여기는 은행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흰 와이샤쓰에 단정한 용모를 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그 은행의 신뢰도를 높여준다.
어디 파일러트와 은행뿐인가. 어느 분야에 종사하든 모든 직업인은 자신의 직책에 주어진 직분과 그것의 도덕적인 수준을 스스로 지켜야할 의무가 있다. 이것은 인간이 사회 생활을 하는 가장 원초적인 조건인 것이다.
은행원이 자신의 책무를 잊고 부정 대출이나 궁리한다면, 공무원이 공복의 사명을 덮어두고 뇌물이나 생각한다면, 철도원이 시시 각각의 직무들 잊고 한눈을 판다면, 목사가 소명 의식도 없이 치부에나 골몰한다면…이 세상의 모든 질서는 어떻게 되겠는가. 병사가 총부리를 거꾸로 돌려대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여객기의 커맨더가 밀수의 커맨더 (사령관) 노릇이나 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그 영예로운 직책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겉 희고, 속 검은』 위선자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은 그가 소속하고 있는 항공기의 공신력과 신뢰도를 깎는 짓이다. 그것이 안전과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용역업인 점에서 더욱 그렇다. 수많은 생명들을 이끌고 창공을 날면서 그 조종사는 엉뚱하게 밀수나 궁리하고 있는 비행기의 안전을 누가 감히 믿겠는가. 이것은 모든 직책인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욱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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