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발달은 인간을 약화시킨다|【런던=박중희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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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인간 사회란 문명이 발달할수록 그의 체질은 약화해진다.』 물론 이건 보기에 따라선 당치도 않은 하나의 가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석탄 노조의 파업으로 파산 일보 전에서 겨우 숨을 돌리고 있는 영국 사람들에게 이것은 체험이 제기하는 하나의 현실적인 질문 이래도 괜찮다. 그것은 이번 파업 소동이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소스라치게 깨우쳐준 것이 바로 현대 사회 생활의 취약성이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총 노동력의 0·5%, 전 인구로 치자면 영점하고도 영이 몇개 더 붙어야할 극소수 (14만 명)의 광부의 파업이 2월말까지만 계속됐어도 영국의 전 산업이 파탄이 날 지경이었다는 것부터, 뭐 몰랐던 것은 아니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다시 눈을 비비고 봐야했던 일이다. 사회 하층 군소 노조들의 엄청난 세력 집단화라는 것도 광의의 현대 문명의 한 현상으로 친다면 이것이 사회적 형평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잠재적 공격력에 대한 사회적 방어란 줄 곧 약화돼 왔고 앞으로도 (군사력 동원이라는 폭력적 반응을 배제한다면) 계속 약화되리라는 것이다.
소위 문명 사회의 약체화란 경제적 합리주의의 극대화라는 사회 자체가 지니는 생리에서도 비롯하고 있다. 이번 탄광 노조 파업의 경제적 위협이 거의 결정적이었던 까닭도 산업 시설이나 교포 수송 수단의 전화나 중앙 전력 공급원에 대한 의지도가 그만큼 높아져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주 가까운 예 하나를 들자면 10년전 만하더라도 영국의 방적 산업계가 소비하던 전력의 2%는 자체의 발전 시설에 의해 공급됐었다.
그러나 「코스트」 절감을 위한 합리화로 자체 공급 비율은 그 동안 10%로 줄었다. 그러니까 탄광 노조 파업과 같은 위기 상황에 대한 「저항력」은 산업 기구의 현대화로 반감됐다는 얘기도 된다.
이것은 아주 작은 단적인 예에 지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예 한가지를 더 든다면 현대 문명의 한 상징 구실을 해온 「컴퓨터」니 전산기의 경우, 그것은 또한 현대 사회의 취약성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 체험을 통해서 얻은 문명의 한 단면이었다.
국민 경제나 일반 생활에서 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은행들이 정전으로 인한 「컴퓨터」의 가동 중지로 업무 신경의 마비를 가져올 지경에 이르렀었다는 것이다.
일반 생활의 경우 이러한 무방비 상태는 보다 애처로운 형태로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려내 주었다. 밥 한 끼니라도 그저 냉장고에 들어 있는 깡통이나 냉동 식품을 꺼내 먹을 줄 알았던 현대인들은 전기가 끊어지자 그저 어리둥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쿠커」나 난방 장치가 「스톱」 됐다고 해서 대신 장작불이나 구공탄 불을 지필 시설도 자료도 재주도 없다.
이런 것은 그래도 약과다. 정전으로 「엘리베이터」가 끊겨 까마득한 고층 주택으로 지팡이를 짚고 허덕이며 기어올라가는 한 부부의 모습은 이른바 「고층 문화의 비애」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생활의 일상적인 「패턴」- 이를테면 상층에 올라가는 것은 으례 승강기를 이용한다든지 하루에 평균 2시간 동안 TV를 본다든지 하는 따위의 생활의 상궤가 갑자기 변화될 경우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감·당혹감, 그리고 그가 의식하는 불편감은 미개지 나 전근대적 사람들의 경우보다 더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 분야의 마비가 며칠동안 쌓인 대서 그것이 사회적인 위기가 된다고 한다면 한 50년전 사람들만 하더라고 웃었을는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도 「아프리카」 원시 촌락 사람들에게 이런 소릴 하면 미친 소리로 들릴 수밖엔 없을 것이다.
자동차 덕으로 사람의 양다리가 오징어 다리처럼 가늘게 퇴화한다는 것은 흔히 과학 소설이 그려내는 미래인의 환상이다. 그러나 무릇 여러 가지 위기 상황에 대항, 이를 극복해 나가는 능력 면에 선 벌써 그들의 다리가 오징어처럼 가늘어지고 있지 않는가 하며 지금 이곳 사람 등 그들의 다리를 쓰다듬으며 곰곰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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