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월급' 사내복지기금 1조6700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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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공사는 최근 3년간 사내근로복지기금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1인당 평균 720여만원을 지급했다. 직원 1인당 매달 최대 17만5000원을 신협 출자금 지원 명목으로 나눠 주고, 최대 140만원의 복지포인트 외에 장기근속자에 대한 우대정책으로 50만~200만원의 복지포인트를 더 뿌렸다. 또 대학생 자녀와 특목중·고교생 자녀를 둔 직원에겐 각각 장학금 300만원과 학자금 100만원을 무상 지원했다.

 1조6700억원. 공공기관 임직원들이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쓸 수 있는 돈인 ‘사내근로복지기금’의 지난해 말 현재 규모다. 사내근로복지기금은 기업 이윤을 노동자와 공유한다는 취지로 이윤의 일부를 출연해 만든 기금이다. 기금을 활용한 직원 복지 혜택은 근로소득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소득세를 납부할 필요가 없고 급여성 복리후생비로도 간주되지 않는다. 곳간을 틀어쥐고 있는 예산부처의 통제를 벗어난 공공기관 직원들의 ‘쌈짓돈’인 셈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은 총인건비에 들어가지 않아 규제에서 벗어나 있다 보니 묶여 있는 임금을 기금으로 메우는 등 도덕적 해이가 많았다”며 “사내근로복지기금 폐지를 검토했지만 기관의 자율성을 제약한다는 주장도 있고 노조 반발도 우려돼 출연율을 제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기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하다. 생활안정자금과 주택자금·경조비·학자금·의료비 지원이 가장 일반적이다. 또 선택적 복지제도라는 이름으로 문화여가비·식사대·동호회 활동지원비 등으로 쓸 수 있다. 기금이 없다면 모두 월급으로 해결해야 할 항목들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295개 공공기관 중 사내근로복지기금이 있는 기관은 86개다. 지난해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액이 가장 많았던 기관은 한국철도공사로, 250억원에 달했다. 1인당 누적액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4200만원으로 1등이다.

 공공기관의 사내근로복지기금은 2004년 시작돼 2009년 1조8639억원까지 불어났다. 2010년 감사원의 대대적 감사 이후 상승세가 꺾였다. 기금 출연 및 운영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기재부가 기금 출연율을 제한한 것이다. 공공기관 세전 순이익의 5%를 기준으로 출연금액을 정하되 직원 1인당 출연 규모와 유사·동종 민간기업의 출연 수준을 감안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사내근로복지기금을 불법적으로 이용한 사례가 적지 않다. 국정감사에서는 조폐공사가 근로복지기금으로 대학생 자녀 학자금 대출 상환액의 80%를 지원해 오다 기금이 고갈돼 지난해 10월부터 중단한 것이 드러났다. 이렇게 조폐공사가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갚아 준 자녀 학자금 대출액은 3년간 47억3000만원에 이른다.

특별취재팀=김동호·김기찬·최준호·이정엽·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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