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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 숫자만 채우려 해선 곤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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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대환(사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이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국민에게 환상만 심어주는 일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숫자만 채우려는 관료주의적 발상에서 추진해선 곤란하다”고도 했다. 15일 서울 렉싱턴호텔에서 열린 한국노동연구원 조찬회 특강에서다. 13일 정부가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 추진계획을 발표한 지 이틀 만이다.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 위원장의 지적은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을 촉구하는 것이어서 상당한 논란이 일 전망이다.

 이날 김 위원장은 “시간제는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가 아닌데 당정에서 처음부터 너무 좋은 일자리로 출발시키려 한다”며 “이렇게 되면 나중에 현장에서 괴리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정부가 고용시장을 고려하지 않고 정규직 일자리를 할당하듯 밀어붙이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시간제 일자리를 자랑하는 네덜란드도 처음부터 좋은 일자리가 아니었다”며 “오랜 기간 노사가 한 발짝씩 양보하고 협의하다 보니 시간이 흐른 뒤에 좋은 일자리가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네덜란드 시간제 일자리를 모범사례로 자주 인용하는 것을 의식한 발언이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민간부문의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26일 여는 ‘시간제 일자리 채용박람회’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이 박람회에는 삼성 등 10개 그룹이 참여한다. 그는 “삼성에서도 처음엔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없다고 했다. 정부에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추진하면서 민간도 참여하게끔 분위기를 조성하니까 발 빠르게 6000명을 뽑는다고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삼성이 하니 다른 기업들도 눈치 보면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일자리 정책이라는 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며 “기업들은 정부 눈치 보지 말고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자리와 관련해 기업을 압박하는 정부와 무작정 정부에 보조를 맞추려는 기업을 싸잡아 비판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일자리는 조급증을 갖고 양적으로만 늘리면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며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말씀드렸지만 정성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면서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정치권에서 일자리를 놓고 논의하는 수준이 매우 천박하다”며 “정말 책임 없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노사정이 협력을 통해 서로 양보하고 함께 가야 옳다”고 지적했다. “국회가 나서서 새로운 고용체계를 설계하는 밑바탕을 만들어야지, 그때그때 유불리를 갖고 건드리면 안 된다”고도 했다. 고용정책에 대한 포퓰리즘적 접근을 경계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저녁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에게도 이런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자리에서 노사정위와 논의하지 않고 시간제 일자리 확산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노사정위를 홍보기구로 묘사한 것 등에 대한 항의의 뜻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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