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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북경 점 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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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경=스탠리·카노(WP지)=본사독점특약】「닉슨」일행이 통과한 공항으로부터 북경시내까지의 길은 논과 과수원, 그리고 공장·노동자 아파트 등의 회색 빛 풍경이 대부분이었다.
가두 구석구석과 건물 벽에는 구호가 걸려있었는데 『생산증대를 위해 혁명하자』라는 것도 눈에 띄었다.
교외에서 볼 수 있었던 일반적인 초라한 인상은 중공지도자들이 자주 지적했듯이 중공이 아직도 빈곤하고 낙후한 나라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근 36만7천 평 넓이의 천안문광장은 중공의 국경일이나 「메이·데이」같은 날을 맞아 대규모 군중대회나 퍼레이드가 열리는 곳. 이곳은 또한 3년 전에 막을 내린 문화혁명동안 그 유명한 1백만 명의 대 군중대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닉슨」이 도착하기 하루전인 20일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반미구호가 나부끼고 있었다. 그중 『우리는 미 제국주의와 대항하여 민족해방에 앞장 선 인지 3국민의 승리를 찬양한다』라는 것도 있었다.
경축일이면 흔히 모택동이 모습을 나타내는 곳인 붉은 천안문에는 또 다른 구호가 붙어있었는데 『미제와 유태민족주의에 투쟁하는 아랍인을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닉슨」대통령과 주은래가 제1차 회담을 가진 곳인 인민 대 전당은 소위 「대약진운동」기간인 1958∼1959년 사이의 11개월에 걸쳐 『사회주의 특유』의 사실주의 양식으로 건축된 것이다.
「닉슨」대통령과 그의 일행을 영빈관에서 묵고 있다. 당초 50년대에 소련기술자를 위해 세워진 영빈관은 2층과 3층이 섞인 현대식 건물로 북경의 왕 연담 공원이라 불리는 지구에 위치해 있다.
지난달 초「알리·부토」 파키스탄 대통령이 중공을 방문했을 때도 이 영빈관에 머물렀었다. 이곳에 체류했던 외빈으로는 지난가을 북경을 방문했던 월맹수상 「팜·반·동」도 있었다.
왕 연담 공원은 전기철책으로 둘러싸여 엄중하게 경비되고 있다. 이공원 안에는 몇몇 중공관리들도 살고있어 「닉슨」은 이들과 지호지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중공이 비록 국내에서 「닉슨」대통령에게 비교적 조용한 대우를 해주고 있으나 2백 명 가량의 기자와 기술자들에게는 특별히 협조적이다.
기자들에게는 통역과 자동차가 제공되고 북경의 여러 관광지를 구경하도록 초대되고 있다. 이들 관광지는 각급 학교·공장·집단농장과 병원 등인데 중공주재 외국기자와 외교관들도 전에 가보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대통령 수행기자들은 민족반점에 특별히 마련된「프레스·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호텔」은 보통「티베트」·「위구르」·「카자크」등 소수민족의 집회에 쓰이던 곳이다.
이곳에는 장거리전화와 「텔리타이프」및 방송「아나운서」를 위한 호화판 방송실이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중공은 온갖 협조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보도진이나 미 정부 관리들에게 이들은 중공의 손님이며 무절제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뚜렷이 하고 있다.
20일에 있었던 기자들에 대한 환영연설에서 중공대변인은 미국관리들이 「프레스·룸」을 브리핑 장소로 사용할 의향이라면 이 요구를 받아들여 외교부에서 이를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기자들의 일반적인 분위기는 매우 흥분해 있어「워싱턴」의 어느 기자는『나는 역사의 현장에 와 있노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중공의 언론인들은 지극히 친절하기는 했지만 무슨 일을 밝히고 안 밝히고 하는데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어느 기자가 모의 후계자였던 임 표의 운명에 대해서 묻자 어느 언론인은 『오리고기 음식이나 더 드시지』라고 말대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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