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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영영 '흰 세상'으로 간 '백색 종이 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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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90년대 초반 안산에서 한지로 작업중인 권영우 화백. [중앙포토]

‘종이 화가’ ‘백색의 화가’가 영영 흰 세상으로 갔다. 한국화가 권영우 화백이 14일 오전 별세했다. 87세.

 해방 1세대 작가로, 한지를 재료삼은 추상적 작품으로 한국화단에 새바람을 일으켰던 그다. 1966년 신세계 화랑에서 가진 첫 개인전에서 그는 한지를 찢고 구멍 뚫는 전위적 작품을 내놓았다. 당시 서양화단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재료의 물성에 대한 탐구를 전통 재료로까지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술평론가 이일은 “권영우는 동양화를 했지만, 흙과 먹은 다 버리고 종이 가지고만 한다”고 평한 바 있다. 본인은 “내 주위에 항상 하얀 화선지가 널려 있기 때문에 그걸 갖고 작품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1926년 함경남도 이원에서 4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중국 룽징(龍井)의 광명중학교를 다녔고, 44년 창춘(長春)의 만주영화사를 거쳐 서울 철도청 운수과에서 일했다. 박노수(1927∼2013), 문학진(89), 서세옥(84) 화백 등과 함께 서울대 미술대학이 개설된 이후 입학, 이땅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1세대다.

 51년 피난지 부산에서 졸업, 9·28 서울수복 후 종군화가단에서 활동했다. 55년 휘문고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32세 되던 58년 ‘바닷가의 환상’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문교부장관상을 받았다. 전통을 중시하는 우리 한국화단에서 초현실주의적 화풍의 이 그림으로 ‘화단의 이단아’로 불렸다.

 70년 중앙대 교수로 부임했고, 78년 프랑스로 건너가 10여 년간 지내며 독특한 종이 작업을 세계에 알렸다. 65년 도쿄 비엔날레, 7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했고, 90년 호암갤러리 초대 개인전을 열었다. 95년 예술원 회원이 됐다. 국전 문교부장관상(1958·59), 국전 초대작가상(1974), 대한민국 예술원상(1998), 은관문화훈장(2001), 허백련상(2003) 등을 받았다. 고인은 2007년 주요작 70여 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박순일씨와 장남 오협(건축가)씨, 차남 오현(오산대 교수)씨 등.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6일 오전 8시다. 031-787-1511.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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