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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과 마음 나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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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순자
대한민국김치협회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요맘때가 되면 배추를 가득 실은 트럭이 도시로 들어오고 골목 어귀에 배추더미가 쌓이곤 했다. 김장을 하는 날이면 동네 아낙네들이 둘러앉아 함께 준비한 양념을 절인 배추에 버무리고 남자들이 이 김치를 항아리에 담아 밀봉한 뒤 가마니나 볏짚으로 싸서 땅속에 묻었다. 김치를 먹을 때면 이런 풍경을 연상하며 어머니의 정성에 감사하게 된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밥 대신 빵을 먹고 그에 따라 반찬도 달라졌다. 여기에다 주부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번거로운 김장을 하지 않는 경향이 늘고 있다. 생활이 분주해지면서 간편한 식생활을 선호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온 가족이 한데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식사 기회도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

 하지만 김치만큼 우리 몸에 딱 맞는 좋은 것이 있으랴. 최근 건강에 좋은 기능성 식품재료에 대한 선호가 늘어나고 가공식품의 폐해가 널리 인식되면서 우리 몸에 좋은 슬로푸드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번거롭고 비효율적이지만 우리 식문화의 뿌리를 되찾는 의미에서 본다면 김장이야말로 건강한 식탁을 만드는 데 안성맞춤이다. 김치는 유익한 재료를 많이 사용하고 젖산 발효를 거쳐 만들어지기 때문에 건강에 좋은 식품이다. 김장하는 풍습이야말로 후세에 남겨야 할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실하다니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다.

 김치 개발 외길을 걸어온 나는 2012년 3월 경기도 부천에 김치테마파크를 열었다. 어린 유치원생부터 초·중·고생, 일반인은 물론 외국인에 이르기까지 찾아오는 모든 분에게 다양한 김치를 직접 담가볼 수 있는 체험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김치를 좋아하지 않던 어린 학생들도 김치 만들기를 체험하며 김치의 참맛을 알게 되면 우리의 전통 식생활을 이해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간다.

 최근 김치산업의 경쟁력을 갖춘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대한민국김치협회에서는 김치산업 전문리더, 김치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산업현장 교수이기도 한 나는 수시로 지역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과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김치 명인이 될 수 있었던 경험을 나누는 농촌 재능 나눔 강의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더불어 김치 기능 전수자가 늘어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술을 전파하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김치가 좋아 하는 일이지만 김치문화가 우리 삶 속에 생생히 살아있도록 거들고 김치 명인으로서 내가 가진 재능을 나누는 것이 사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렵다고들 한다. 주변에 나보다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없는지 둘러보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한두 가지 재능은 있을 것이고 조금씩 나누다 보면 어렵다는 경제의 주름살이 조금이나마 빨리 펴지지 않을까. 예부터 김장철이면 함께 품앗이를 했던 우리의 삶이 나눔 자체였고 그것이 우리 한국 사람의 마음이었으니까.

김순자 대한민국김치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