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기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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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직 경관이 인사불만을 품고 상사인 경비과장을 사살하고 서장을 인질로 하여 1백여 동료 경찰관과 24여 시간 동안이나 대치 끝에 자수한 사건이 일어났다.
과거에도 경관들의 총기관리 소홀로 인한 난동사건은 적지 않았으나, 이번처럼 상관을 사살하고, 직속서장을 인질로 한 난동이 바로 경찰관서청사 안에서 일어난 불상사는 처음이라는 데서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진주경찰서의 교통계 소속으로 있다가 최근 벽지지서로 전근 발령을 받은 이영재 순경은 난동을 부리는 도중 자신이 사살한 상사인 동서경비과장의 비위를 낱낱이 대서시키면서 1년 반 동안 매일같이 돈을 요구했으나 돈 나올 구멍이 없어 그 요구를 거절하자, 지서로 쫓겨 나가게 됐다면서 『우리 순경이 받는 봉급이 얼마냐』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교통계 순경이 교통법규 위반차량을 단속하면서 딱지를 떼지 않는 대신 현금을 받아 가는 사례는 이미 거의 공지의 사실인데, 이러한 돈이 「상납」되어 경찰의 기강을 흐리게 한다는 것도 자주 듣던 일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첫째로는 경찰내부에 누적된 이 같은 부정이 또 하나의 난동사건으로 터진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어떤 사회를 물론하고 일부의 부조리는 있게 마련이다. 공무원사회에도 인사불만이 없을 수 없으며, 또 그 중에는 성격적으로 변태적 난폭성을 띠 사람도 있어, 어떤 불측의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민중의 지팡이로서 사회질서를 적극적으로 유지해야할 책임을 지고 범법행위자를 색출, 처벌해야 할 막중한 의무를 지고 있는 경찰로서는 개세탁이라도 독야청청의 기개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경찰이 부패하고 나면 사회질서를 바로잡고, 범죄자를 색출하거나 사회의 온갖 부조리를 광정할 기관은 사실상 없어지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경관들의 가혹행위가 자주 논의되고 있고, 직권을 남용하여 인권을 유린하는 일이 자주 있었으나 이것은 일반인에 대한 것이었기에 일부 경찰의 악질적 행위로 규탄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경찰내부에서조차 상납요구행위가 상식화하고 돈에 따라 인사나 근무처가 좌우된다고 해서야 어찌 경찰전체를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경찰인사에는 불소한 액수의 금품거래가 있어야한다는 풍문이 있었으나, 우리는 이를 결코 취신치 않으려 했었다. 그렇지만 만일 이번 사건에서 범인 이 순경이 폭로한 것이 사실이라 한다면 이는 도저히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엄격한 상명하복의 명령계통 하에서 규율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경찰에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른 공정한 인사가 행해지지 않고 여기에도 금권만능사조가 팽배한다면 경찰기강이란 이미 존재할 수조차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한편 본란이 누차 지적한 바와 같이 경찰의 이같은 기강해이는 경찰예산의 비현실성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처럼 경찰이 국고에서 필요한 경비의 전액을 감당하지 않고, 이것을 시민들이나 범죄인들에게서 받아서 쓰는 경우, 경찰이 제구실을 다하지 못 할 것은 명백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저서운영비나 수사경비를 동네유지들에게서 받아들이는 경우, 이들은 치외법권적 지위에 놓이게 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경찰이 공정한 일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국민이 그들을 전체적으로 불신하게 될 것이요, 말단경찰의 부정행위가 행정부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경찰의 부정부패행위를 근절하고 경찰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경찰예산의 비현실성을 시정하는데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내무부는 이번 사건을 한 경관의 탈선행위로만 파묻으려 하지 말고, 경찰인사행정의 쇄신으로 몰고 가야 할 것이며 경찰의 자체정화와 기강확립을 기필코 달성하는 계기로 만들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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