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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혼돈의 동북아 … 한·중·일 NSC 삼국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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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미국식 안보 보좌 기구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 때인 1947년 백악관에 만들어졌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초기(1963년) 한국도 도입했다. 김대중정부 시절엔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굵직한 안보 현안을 다루며 존재가 부각됐다. 이런 NSC를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중국이 국가안전위원회란 형태로 받아들이기로 12일 결정했다. 박근혜정부가 3월 국가안보실을 만들고, 일본이 내년 초까지 NSC를 조직하겠다고 밝힌 데 이은 움직임이다.

 한·중·일 동북아 3국이 안보 전략을 짜는 최고 기구인 NSC를 무대로 열전(熱戰)을 벌이는 형국이 펼쳐지게 됐다. 격랑에 휩싸인 동북아 정세의 반영이다. 지금 동북아는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한·미·일의 한 축과 북·중·러의 또 다른 축이 미묘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고 ▶역사·영토 문제를 둘러싸고는 한·일 간, 중·일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그 위에 세계 패권을 놓고 미·중이 벌이는 G2경쟁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 한국도 격랑의 중심에 서 있다. 당장 13일 서울에서 이뤄진 한·일 국방차관 만남에서는 니시 마사노리 일본 국방차관은 한국이 집단적 자위권 추진을 지지해 줄 것을 요구하며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제안하는 등 공세를 펼쳤다. 당사자인 한국은 6자회담 재개 문제도 풀어야 한다. 이날 중국으로 간 조태용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우다웨이 중국 6자회담 대표와 만나 방북 결과를 듣는 등 6자회담 재개 문제를 논의했다.

 이런 복잡한 지역정세의 해법 마련을 위해 각국은 대전략 을 수립할 컨트롤타워 정비에 나서고 있다. 김성한(전 외교부 차관)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금 동북아는 중·일 간 넘버2 경쟁, 미·중 간 G2 경쟁이 치열한 긴장의 중심지”라며 “각국이 체계적이고 입체적인 대외 전략 수립을 위해 NSC와 같은 최고전략기구를 정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국가안전위 창설 결정은 동북아를 무대로 벌어지는 NSC 열전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미·일 동맹을 기반으로 군사력 강화에 나선 일본이 노골적으로 중국과의 마찰을 유도하며 치고 들어오자 중국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김대중·노무현정부 통일부 장관으로 NSC상임위원장을 지낸 정세현 원광대 총장은 “당이 주도하는 중국의 전통 외교방식으로는 미·일의 의기투합에 맞서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미국을 잡으려면 미국식 NSC의 기민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깔린 듯하다”고 말했다.

 국가안전위 창설이 일본 견제와 역내 패권 공고화라는 대전략 의 신호탄이라는 해석도 있다. 또 시진핑 주석이 직접 국가안전위 주임을 맡은 대목을 놓고는 공안 , 사법기관, 국가안전부, 외교부를 총괄하는 형태로 권력을 집중시켰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본의 경우 NSC 출범과 함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평화헌법 개정 등을 동시에 추구하며 ‘보통국가’로의 전환이란 대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망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적극적 행보를 보이는 것도 대(對)중국 견제 라는 미국과 일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총리를 의장으로 하는 관방장관, 외무상, 방위상 등 4인 각료회의 형태로 운영될 일본판 NSC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외교 책사’로 불리는 사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내각관방참여를 초대 국장으로 내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 국가안보국은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 ▶북한 핵무기 견제를 주요 목표로 적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북아라는 체스판에서 국익을 건 열강들의 생존전쟁이 시작된 만큼 한국은 ‘솔로몬의 지혜’와 같은 전략적 대응방안을 수립하는 게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호철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은 “한국은 북핵과 일본 팽창이란 두 가지 숙제에 봉착해 있다”며 “미·일과 북핵 관련 전략적 보조를 맞추면서 , 일본의 군사적 팽창엔 중국과 공조하는 동시에 미국의 제어를 이끌어낼 묘안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의 안보 보좌 기능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NSC정책조정실장 출신인 이봉조 극동대 교수는 “이명박정부부터 NSC가 유명무실해지고 지금은 국가안보실과 외교안보수석이 중첩적 역할을 하고 있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지금은 19세기 말 미·중·일·러 열강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경쟁하던 시기와 같은 양상”이라며 “엄중한 상황에서 국가안보실이 정보 통합과 전략수립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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