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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이미지의 배반, 보이는 것은 과연 진실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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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금요일 오후엔 무료 개방한다는 미술관 정책 덕에, 관객이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이들은 곧장 6층 특별전시실로 향했다. ‘마그리트: 일상의 신비, 1925∼1938’전을 보기 위해서다. 덕분에 마그리트(1898∼1967)의 명화보다 그 앞을 겹겹이 둘러싼 관객들의 뒤통수 보기 바빴다. 한국어·중국어·프랑스어 등 각종 언어가 들리는 ‘국제화’ 현장,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관광객 특수다. 공짜여서든 관광용이든, 미술관이 이렇게 북새통인 장면은 늘 부럽다.

 벽지 디자인, 패션 광고 분야에서 일하던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하면서 오늘날의 거장이 됐다. 그가 회화의 혁신을 이룬 초창기 13년간을 조명한 이 전시에는 파이프를 그려놓고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고 적은 ‘이미지의 배반’(1929), 알을 보며 새를 그리는 화가를 그린 ‘통찰력’(1936) 등 대표작 80점이 나왔다. ‘인간의 조건’도 그중 하나다.

르네 마그리트, 인간의 조건, 1933, 캔버스에 유채, 100×81㎝,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소장.

 바깥 풍경과 구름 모양까지 일치하는 그림이 놓인 창가, 마그리트는 1933년 이 수수께끼 같은 그림을 그리고는 뒷면에 ‘인간의 조건(La condition humaine)’이라 적었다. 우리는 창가에 놓인 풍경화를 보는 걸까, 창밖의 풍경을 보는 걸까. 아니, 캔버스 속 풍경은 과연 온전한 바깥 풍경일까. 혹시 뭔가 다른 장면을 은폐하기 위해 비슷하게 그려진 캔버스를 갖다 놓은 건 아닐까.

 ‘인간의 조건’은 그림의 본질을 묻는 야심 찬 작품이다. 그림은 본디 평면 위에 현실의 ‘환영’을 담는 과정, 화가들은 평면 위에 입체 세계를 그려 넣기 위해 착시 효과를 연마해왔다. 착시의 역사가 곧 회화사다. 마그리트는 바로 이 착시를 비틀어 우리가 보는 세계의 진실이 무엇인가 되묻는다. “내 그림이 사고의 자유가 드러내는 구체적 특징을 표현하도록, 나는 사고를 구체화했다. 나는 이런 언어적 시도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되도록 의미를 오염하지 않는 것, 바로 그 불가능한 일을 목표로 삼는다.”

 MoMA는 이미 1965년, 마그리트 생전에 회고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수십 년 만에 뉴욕에서 열리는 마그리트의 주요 전시다. 오랫동안 그의 전시를 열지 않았던 데 대해 MoMA의 담당 큐레이터는 “마그리트의 작품이 너무 유명해서”라고 답했다. 일상의 사물을 기묘하게 비틀어 충격을 주는 게 그의 작품이 가진 힘일진대, 이미 너무 유명해져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다. 익숙한 이미지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되곤 하는 명화전의 아이러니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