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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줄 똑바로 서라"는 윤석열 징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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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권석천
권석천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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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은 검찰을 위해 금요일을 창조했나. 지난 토요일 신문을 펴 드는 순간, 다시 이 물음에 부딪혔다. ‘윤석열 전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 중징계’. 금요일(8일) 열린 대검 감찰위원회 결과가 늦은 저녁 방송에 보도되면서 일제히 기사화된 것이다.

 왜 요일이 문제냐고? 보라. 황교안 법무장관이 채동욱 검찰총장 감찰을 지시한 것도, 그에 대한 감찰 결과가 발표된 것도, 윤 전 팀장 수사 배제 논란이 불거진 것도 금요일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모든 일의 발단인 국정원 수사 발표(6월 14일)도 금요일이었다. 왜 금요일일까. 나쁘게 보자면 주말을 이용해 뉴스의 흐름을 끊자는 의도가 담겼을 수 있다. 좋게 보자면 중요한 문제이니 심사숙고해 보라는 배려일 수도 있다. 그러니 생각을 해보자.

 윤석열. 내가 알기로 그는 줏대가 강한 특수부 검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그를 ‘의로운 검사’로 만든 건 개인의 개성보다는 상황 자체였다. 검사 출신 변호사의 말이 떠오른다.

 “선거 관련 트윗을 보고했는데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머뭇거렸다는 거 아닌가. 그런 마당에 정식 절차를 밟아 법무부에 보고하면 청와대를 통해 국정원에 알려질 테고, 그러면 국정원 직원 조사는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거다. 수사하는 검사에겐 사실상 외통수였다.”

 윤 전 팀장이 절차와 규정을 위반한 건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다만 그 책임을 물으려면 더욱 철저히 절차적 정의를 따라야 했다. 그런데 대검은 한 차례의 대면조사도 벌이지 않은 채 “수사 외압은 없었다”고 말한다. ‘편향 감찰’‘부실 감찰’의 부담은 조 지검장이 “기강을 바로잡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고 사의를 밝히며 떠안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사태의 핵심 당사자가 아니었던 박형철 부팀장(부장검사)까지 징계 청구된 대목이다. 징계 사유는 ‘지시 불이행’. 그제 대검 감찰본부의 기자 브리핑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

 -박형철도 징계했는데 이유가 뭔가. 윤석열은 자신이 주도했다고 하지 않았나.

 “실제 마지막 공소장은 박형철이 날인했다.”

 -박형철에게도 지검장이 지시했나.

 “(조 지검장 집에) 같이 갔으니까….”

 공안통으로 분류되는 박 부팀장을 징계 대상에 포함시킨 데 대해 “안타깝지만 조직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시각도 있다. 동의하기 어렵다. 울뚝불뚝한 상관을 따라갔다는 이유로, 법원이 받아들인 공소장변경 신청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당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번 징계 청구는 검사들의 복무지침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줄 잘못 섰다가 다칠 수 있으니 줄 똑바로 서라”는.

 모든 사달이 일단락된 듯 보이지만 그 여진은 깊고 오래갈 것이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압수수색”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검찰 수사가 이념 청소와 공기업 인사까지 하고 있다. 힘이 커지는 데 반해 조직의 위상과 중립성은 위기다. 앞으로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한다 해도 불신의 늪에서 빠져나오긴 쉽지 않을 터. “친박(親朴)무죄 반박(反朴)유죄”(표창원) 프레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의 물음은 이것이다. 불금(불타는 금요일)마다 일어났던 이상한 일들은 무엇을 향한 조준선 정렬인가. 검찰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인가. 마지막으로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대사 한 토막을 한국 검사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부정에 맞서다 징계에 회부된 은행원이 간부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메가뱅크는 검찰로, 고객은 국민으로 대체하면 된다.

 “메가뱅크는 이 나라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결코 무너져선 안 된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문제에 집착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신들밖에 생각하지 않는 집단이 돼 있지 않습니까. 약자를 쳐내고, 같잖은 파벌의식에 서로를 견제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걸 입 밖에 내지 않고…고객들을 계속 배신한다면 우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권석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