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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 정리의 법제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재무부는 부실기업 정리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기업 합리화 법의 제정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한다.
구상중인 기업 합리화 법의 골자는 ①부실기업주의 기업재산 횡류에 대한 제재 ②부실기업의 합병계열화 및 경영 위임 등 소유권 제한 ②사채정리에 관한 특례 ④담보물 처분에 대한 특례 ⑤기업 합리화 기금조성 및 합리화위 설치 등이다.
부실기업 문제는 비단 금융정책면에서 뿐만 아니라, 산업정책·수출정책 등 경제 정책 전반에 대해 커다란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이 나라 경제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힘든 실정에 있다. 그런 뜻에서 부실기업을 정리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자 하는 노력은 원칙적으로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유의해야할 것은 이에 따른 문제점도 결코 적지 않으리라는 사실이며 그것은 어쩌면 교각살우격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첫째, 부실기업을 정리하기 위해 강력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좋지만, 원칙적으로 경제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는 생각은 그 자체가 비경제적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부실화한 원인의 대부분은 경제외적인 일종의 사회풍토 병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이 기업성에 입각해서 투자하고 오직 순경제적 척도에 의해서만 운영되는 풍토 하에서는 이른바 상대적인 대기업들이 부실화할 소지는 생각할 수 없다.
오늘날 부실화 하고있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그래도 차관을 들여올 수 있었으며 많은 금융 특혜를 받을 수 있는 기업들이었다. 이처럼 혜택을 많이 본 기업들이 부실화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풍토적 속성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서는 또 다른 부실기업들이 계속 생겨날 것임을 직시해야할 것이다.
둘째, 금융 정상화 작업이 완성되지 않는 한, 부실기업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뜻에서 당국은 그 동안 추진하고 있는 금융 정상화 작업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가져오고 있는가 중간평가를 내려주기 바란다. 이른바 압력대출은 여전히 시정되지 않고, 따라서 금융 정상화 작업도 여전히 답보상태라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따라서 부실기업 문제는 바로 이처럼 금융이 비 금융적 척도에서 운영된 결과라는 것을 외면해서는 아니 되겠다.
셋째, 기업 합리화법이 소급 법으로 제정되지 않는 한, 기업주의 재산 횡류를 제재할 경제적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합리화 법을 만들었다고 해서 이미 횡류된 재산을 환원시키기는 그다지 쉽지 않은 반면, 소급 법까지 제정하여 이를 강행하는 경우, 사유재산에 대한 불안의식이 제고되어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법 제정을 통해서 장내의 횡류는 막을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이 이미 부실화한 기업을 회생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넷째, 부실기업의 사채처리에 특례를 인정하고 은행 담보물 처분에도 특례를 인정함으로써 부실기업을 금리부담에서 구제하고 또 부실기업을 용이하게 매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부실기업의 대부분이 자기자본을 거의 무일푼으로, 은행자금과 차관자금만으로 설립, 운영되고있는 실정에서 엉뚱하게 사채권자만 희생되는 것도 깊이 생각할 문제이다.
또 부실기업의 대부분은 담보부족을 일으키고 있는 기업이라 하겠는데, 이들에게 특례를 인정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손실을 은행에 돌리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국민부담으로 귀착된다. 물론 부실기업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보다 적시에 처분해서 자금유동화 시킨다는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례조치가 가져올 금융상의 혼란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밖에도 이러한 특례조치는 자칫 역이용되어 은행 담보물을 헐값으로 인수하는 새로운 이권으로 작용할 소지도 없지 않다.
요컨대 부실기업문제는 비정상적 금융질서가 파생시킨 산물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금융을 진정한 의미에서 정상화시키는 작업이 기히 부실화한 기업을 정리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다. 또 비 금융적인 강제방식으로 부실기업을 정리하려 하는 것도 정상적인 것은 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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