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산보안관」 관직 없는 대민 봉사왕 현시흥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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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별명도 많다. 「부산보안관」에, 「대한털보」. 가슴에 번쩍번쩍, 서부의 보안관이 달았던 별 모양의 「배지」를 달고 다닌다해서 「부산보안관」, 구레나룻수염의 볼품으로는 누구한테나 지지 않는 모습이라 해서 「대한털보」. 항도 부산에서는 이 괴상하게 생긴 할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름은 현시흥씨(65·부산시 동구 초량동866).
현씨의 하는 일은 하도 많다. 이른 아침 7시쯤이면 8평 남짓한 판자촌의 집에서 교통안전 지도용「지프」를 몰고 부산시내지리에 나선다. 이게 도색마지 벗겨지고 고물이 다된 털터리「지프」. 재작년 박경원 내무부장관이 그의 갸륵한 시민 봉사를 위해 선사한 것이다.
그의 일과의 첫 일은 가로등 점검. 비가 오나 눈이오나 간선도로의 신호 대를 찾아다니며 신호등을 점검, 불이 꺼진 신호대에 「스위치」를 넣는다. 이어 새벽 신호를 무시하며 달리는 무법운전사를 뒤쫓아 독특한 웃음으로 운전사의 양심에 선도의 못을 박아준다. 이때 현씨에 걸린 운전사는 얼굴을 붉히며 사죄의 머리를 굽실거리기 마련.
아침 8시30분. 한 바탕의 「퍼트롤」이 끝나면 그는 「러쉬아워」에 맞춰 부산시내에서 교통이 가장 혼잡한 중앙동 현대 국장 앞 네거리에서 두 팔을 벌이며 교통정리를 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이 같은 현씨의 시민 봉사 생활은 벌써 20여년째 계속되고 있다.
아침의 교통 정리 다음엔 다리 밑 순회.
충무교, 초염교, 범일교 밑, 송도 입구 등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있는 2백여명의 넝마주이 등 불우아동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빵·과자를 사주고 연필「노트」를 나누어준다.
현씨는 이들 불우아동들에게 진짜 건강을 돌봐주고 직업마저 알선해주는 「카운슬러」. 그에게는 슬하에 자식이 없다. 그 때문에 부산시내의 모든 불우아동이 마치 그의 자식이나 되는 것처럼 따뜻한 관심을 쏟는다.
그렇다고 그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생활은 거의 비장할 정도로 검소하다. 그는 10년째 아침밥을 안 먹는 「오전부식 법」을 지켜왔다.
부인 김선옥씨(64)와 단 두 식구뿐인 현씨 집 생활비는 한 달에 8천원 꼴. 그의 사업체로는 동광동에 총 자본 1백50만원의 대한 털보자동차 「커버」상사가 있다. 자동차 「쉬트·커버」를 만드는 회사의 매일 수입금은 3천원∼5천원. 현씨는 이 사업을 양자로 맞아들인 고아 10명에게 모든 운영을 맡기고 자신의 생활비로 타 쓰는 8천원 이외의 이익금을 불우아동을 돌보는데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의 도움으로 가난을 벗어난 사람이 6백여명, 그의 손으로 길러낸 고아가 5백여명이 넘는다는 시 당국의 기록.
이제 부인 김선옥씨도 현씨의 별난 인생에 체념했다. 김씨가 집에서 하는 일은 「라디오」를 듣는 일. 『혹시 남편이 교통 사고를 당하지 않나』해서 「라디오」를 들어봤으나 지금은 부산시내의 교통사고 「뉴스」를 「체크」하는 「모니터」의 역할을 한다. 부인 김씨는 이를 「체크」해두었다가 점심을 먹으러 오는 남편에게 사고를 알려준다. 현씨는 부산의 어느 곳에 있든지 시내에서 교통 사고가 발생하면 부리나케 현장에 달려가 경찰관과 함께 사고를 검증하고 운전사를 위해 사후수습을 거들어주어 왔기 때문에 부인의 「라디오」「체크」는 큰 도움이 아닐 수 없다.
현씨는 부산에서 첫 운전면허를 탄 자동차 사업계의 원로. 18세 때 소망의 운전면허를 얻어 당시로서는 누구나 부러워한「택시」운전사가 되기도 했다. 돈도. 많이 벌고 쓰기도 많이 썼다는 그의 말이다.
해방직후 그는 당시부산에 주둔한 미6사단 「저레드」대령의 차를 몰았다. 「클레라」가 창궐한 그 무렵, 그는 6사단 소속 군의들과 함께 6개월 동안 환자 구호에 봉사했다. 그의 봉사정신에 탄복한 「저레드」대령이「민족을 구한 용산」라는 뜻으로 현씨에게 미국의 보안관 「배지」를 가슴에 달아 주었다. 이것이 바로 그의 반생을 봉사 생활에 바치게 한 계기-.
『조그만 노력이 많은 시민의 생명을 구하게 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요 몇 해 들어 바짝 늙은 모습. 그러나 역전의 용사처럼 가슴에는 내무부장관이 달아준 명의 경감계급장 치안국장·부산시경국장이 달아준 훈장, 46년 무사고 운전사 「메달」. 교통 안전지도 지휘관 「메달」등 무려 11개의 번쩍이는 「메달」을 치렁치렁 매달고 교통안전지도 「지프」를 불며 거리를 지킨다. <부산=곽기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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