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평행선 달리는 원격진료 허용, 해법 없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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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정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의사협회는 지난 9일 전국 16개시도의사회장협의회를 갖고 의료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핵심에는 '의사-환자간 원격진료(이하 원격진료)' 허용 문제가 있다. 원격진료를 허용하면 일차의료 붕괴를 가져온다는 우려다. 정부의 의지도 확고하다. 보건복지부는 이미 지난 달 29일 원격진료 허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원격진료 허용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다.

원격진료 허용을 놓고 의료계와 정부만 맞서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입법예고 직후 약사회가 반대입장을 내놨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등 야당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몇몇 시민단체도 원격진료 허용 반대에 동참하고 있다. 반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의료관광산업 활성화 명목으로 원격진료를 허용을 촉구하고 있고, 의료기기 산업에 뛰어든 대기업 역시 힘을 보태고 있다. 원격진료 허용 문제에 각계에서 가세하는 모양새다.

"개원가-일차의료 붕괴할 것"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9일 전국 16개시도의사회장협의회를 통해 의료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원격진료 허용이 도화선이 됐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정부 전면투쟁에 돌입하기로 결의했다. 의협은 원격진료를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료계가 원격진료 허용을 반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일차의료가 붕괴되고 의료전달체계를 왜곡시킨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사실상 의료기관 방문의 거리적 제한이 없어지게 돼 대형병원 환자 쏠림현상이 가속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병원을 포함한 병원급 의료기관들이 전담의사를 배치하는 등 원격진료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렇게 되면 입원환자를 중심으로 진료하도록 돼 있는 병원들이 외래진료를 표방하게 돼 의료전달체계의 왜곡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동네의원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예상이 가능하다. 따라서 원격진료가 오히려 의료접근성을 저해하고 결국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대면진료가 아닌 만큼 오진율이 증가한다는 우려도 있다.

"개원가에 한해 허용하면 문제 없다"

복지부는 의료계의 우려가 기우라고 보고 있다. 원격진료 허용이 의료계 우려와 달리 개원가에 국한돼 있다는 것이 이유다.

이번에 입법예고된 의료법 개정안을 보면 원격진료는 컴퓨터ㆍ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먼 곳에 있는 환자에게 환자의 건강 또는 질병에 대한 지속적 관찰, 상담ㆍ교육, 진단 및 처방을 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대상은 원격지의사가 의학적으로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한 재진환자로서 ▲상당기간에 걸쳐 진료를 받고있는 고혈압ㆍ당뇨 등 만성질환자 및 정신질환자 ▲입원해 수술치료를 받은 이후 지속적으로 경과를 관찰이나 계속적인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환자다.

또 ▲도서ㆍ벽지 거주자 ▲거동이 어려운 노인, 장애인 ▲교정시설의 수용자, 군인 등 의료기관 이용이 제한되는 사람 등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사람과 성폭력 피해자 및 가정폭력피해자 등이 포함된다.

대신 개정안은 이런 환자라도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하여 원격의료를 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원격진료를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는 의미다.

사실 의사협회는 지난 2009년 7월 복지부가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을 당시 조건부 수용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의료전달체계를 의료법에 명시하는 조건으로 원격진료를 전격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의협은 복지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원격진료도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는 것을 근거로 시행하는 것이 의료법 입법취지에 부합한다"며 의원급 의료기관이 원격진료를 원칙적으로 실시하되 병원급은 의원급에서 환자를 의뢰하는 경우에 원격진료를 시행할 수 있도록 의료전달체계 근거규정을 명시할 것을 요구했다.

개원가를 중심으로 원격진료를 허용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부익부 빈익빈 초래…시범사업도 결국 실패"

그러나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의료계는 개원가를 중심으로 원격진료를 허용하더라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격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들이 생겨나 대면진료를 하는 동네의원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특히 현재는 개원가에 한정하고 있지만 언제든 대형병원으로 허용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고 예견하고 있다.

특히 앞선 원격진료 실패 사례들이 원격진료 허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강원도의 원격진료 시범사업이 대표적이다.

강원도는 지난 1월 원격진료 경험사례를 담은 '강원도 공공 U-헬스 서비스 운영성과-만성질호나 원격관리시스템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내놨다.

강원도는 시범사업을 통해 16개 지역의 보건소, 보건지소 의사가 강원도 격오지의 고혈압, 당뇨환자를 대상으로 관리하는 원격진료를 실시했다. 주민들이 집 근처 보건진료소에서 보건진료 담당 공무원(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원격진료를 받는 방식이다.

보고서는 원격진료에 따라 현지의료인의 업무가 증가하고 기존 진료시스템과 호환의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보고서는 '단기적 비용절감을 증명하기 보다는 장기적 효과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의협은 이 보고서에 대해 "강원도 시범상업의 경우 현지 간호사가 있는 상황에서도 (원격진료의)문제점이 발견된 만큼 원격진료는 우선 시범사업을 실시한 이후 정책의 실효성을 판단한 뒤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료계의 요구에 따라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전제로 한 원격진료 허용 법안이 마련됐지만 또 다시 반대논리에 부딪히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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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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