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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상의 경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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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 서언>
이상은 60여년의 한국 신문학사에 있어서 난해의 시인, 자의식과잉의 작가, 주지적 성격 및 「과학자의 실험적인 심리의 소유자」(주1) 천재·귀재 등 가장 문제성을 띤 문학가로서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러한 제가들의 갖가지 논의의 일부가 이상의 문학이해에 기여함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나 대부분의 논평들은 연구방법의 오류로 인하여 이상 진면목의 파악과 이상의 작품이해를 불가능하게 한 결과를 가져왔다. 즉 작품의 본질이 규명되지 않은 난해성이나 문예사조의 수용이유가 구명되지 않은 「모더니즘」의 기수론, 자의식의 개념과 정의가 선행되지 않은 자의식문학과 해체시의 논의, 구체적인 자료제시가 없는 천재 귀재와 주지적 성격이라는 관점 등은 이상의 올바른 인식을 위하여 재고의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필자는 지금까지 행해졌던 비과학적인 논평의 여러 방법들을 지양하고 정신병리학적인 견지에서 이상의 생활면과 작품면·문예사조 수용면 등을 검토함으로써 이상문학의 주류를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자의식의 과잉과 그 해체의 동기 및 난해성의 한계를 규명하여 어떤 의미화도 손이 닿지 않는 이상문학의 특성을 천명코자하는 것이 이 글의 과제다.

<이, 자의식과 자의식문학>
이상을 가리켜 흔히들 자의식과잉의 작가라고 한다. 물론 이 말에는 이설이 있을 수 없으나 술어자체의 개념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사용하는 폐단이 더러 눈에 뜨인다. 그리하여 동일인의 논평에 있어서도 모순되고 자가당착된 술어들이 항과 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자의식에 대한 개념설정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음이 입증된다.
즉 조연현·김춘수·송민호씨 등은 이상의 문학을 자의식의 과잉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조연현씨는 그 말과 더불어 「자의식의 해부」(현대한국작가론 P135)란 말을 사용하여 용어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고, 송민호씨는 「에고의 절정, 자의식의 파멸, 자의식의 수정, 자의식의 허물어진」(주2)이라고 하여 서로 모순을 이루고 있는 술어를 사용함과 동시에 아래와 같이 자의식의 과잉과는 정반대 되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특히 이상에 있어서는 작품뿐만 아니라 생활자체가 「에고」로 일관되었다. 문우관계도 범위가 좁았고, 애정관계에 있어서도 한사람을 계속 사랑할 수 없는 「에고이스트」였다.
이상이 성적 충동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이 그의 관능미를 만족시키는 예술적 충동이라 하겠지만 그 근저에는 정신분석학적 의미에서 근대적 성의 「에고」가 숨어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송민호 이상문학단평, 중등교육자료 1971, P26). 또한 송욱씨는 『문학평전』의「잉여존재와 사회의식의 부정」에서 『이상은 자의식의 과잉도 아무 것도 아닌 박제된 천치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것과 더불어 「의식의 소멸을 바라는 체념」이라는 말을 곁들여 사용함으로써 매우 의미포착이 어려운 애매모호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자의식의 해명이 안개 속에 가리어져 있는 논리의 전개나 자의식의 의미와는 완전히 거리가 먼 이론들은 자의식에 대한 개념설정의 필요성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다.
자의식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의 행동을 의식하고 또 자신을 아는 의식인 자아의식의 뜻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자의식문학」(주3) 이란 말이 성립될 때의 자의식(self-consciousness)의 정의와는 관계가 먼 정의가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self-consciousness와 self-esteem을 모두 자의식이란 말로 번역하고 있으나 self-esteem은 이상의 문학과는 상관관계가 없는 자기존중, 자애의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자의식문학이란 말을 성립시킬 수 있을 때의 자의식(self-consciousness)은 자폐적으로 자기를 집중하는 내적인 반성의식에서만 자아를 의식하는 요소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의식은 외부세계와 단절된 내면적 자기집중의 「성」(주4) 속에 들어있는 부정의 의식으로 「에고」(자아)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의미를 지닌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에고」는 자아 즉 인격을 의미하는 말로서 『충동의 덩어리인 「이드」에 상대하며 「수퍼·에고」(초목아)와 「이드」의 사이에서 그것을 잘 집약, 통일시켜서 이치에 맞게, 현실에 알맞게, 사회적 요구에 적합하게 기능하는 자기 reality-testing-self라고 할 수 있다』(주5) 그러니까 강한 「에고」(자아)의 소유자는 원시적인 충동이나 욕구를 승화 조절하여 생활의 여러 가지 곤란한 일을 융통성 있게 해결해 나아가는 인간이며, 약한 「에고」의 소유자는 융통성 없는 반복되는 방어를 되풀이해서 신경증 및 정신증적 증상을 나타내거나 성격상의 결함을 노출시키거나 하게된다.
이상의 정의에 입각한다면 「에고」의 절정이란 말은 성인적 경지에 이른 사람을 지칭할 수 있는 것이 되므로 이상을 두고 말하기에는 부적당한 술어가 된다. 그리고 자의식이란 말도 이미 자폐적인 내향집중의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자의식의 해부나 자의식의 파멸, 자의식의 수정, 자의식의 소멸, 자의식의 허물어짐, 자의식의 과잉도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들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리하여 외면세계와는 단절된 내면세계를 향한 자의식의 문학은 소설에 있어서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내면전환(inward-turning)의 새로운 기법을 창안해 내었고 시에서는 자동기술법(automatism)이란 초현실주의의 시작방법으로 등장하여 문학작품을 통사적인 구성방법으로 표현하기보다는 해체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와 같은 해체의 방법을 이상의 문학에 적용시켜 볼 때 자의식의 과잉으로 인한 그의 문학은 의도적인 해체이기보다는 정신분열증의 자폐증(autism)적인 현상으로 해체의 의도적 한계를 훨씬 벗어나 있다는데 그의 작품이해에 대한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며, 그것은 이상의 생활과 해체의 동기를 밝혀주고 있다.

<삼, 이상의 생활과 해체의 동기>
사람에 따라 이상의 평가는 각양각색이며, 또한 한사람의 평가에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보면 확실히 이상은 특이한 존재의 한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특이한 존재의 이유가 그의 성격에 연유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사람은 많으나 그것이 어디에서 유래하고 있는가에 대한 원인을 밝혀보지 않고 막연한 용어만을 구사해온 것이 지금까지 이상의 생활을 말한 글들의 타성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그러면 이상의 자의식 과잉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이며, 그것은 그의 생활면에 어떻게 나타났던 것인가.
이상은 3세 때부터 백부댁에서 성장하여 성격형성의 가장 중요한 「에디푸스·콤플렉스」시기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라났다. 그리하여 이상은 동일화의 대상이 없어져서 아버지에 대한 동일화의 혼란을 초래하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백모의 학대는(주6) 더욱더 불안과 내적 갈등을 가지게 하여 이상으로 하여금 자폐적인 세계로 머무르게 하는 정신분열증적인 성격을 가져오게 하였으며 나아가서 성도착증적인 요소까지 지니게 했다.
이것은 「카너」가 『larky infantile autism』(주7)에서 『어린 시절에 부모를 떨어져 생활한 대부분의 소아들이 자폐적인 요소를 가지는 분열적 성격형성이 된다는 것을 밝혀서 소아기 동일화의 중요성을 강조한』사실로써 충분히 증명될 수 있다.
이러한 성격형성시기의 내부적 갈등은 반동형성으로 나타나서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위트」, 다변, 「패러독스」를 끊임없이 쏟아놓음으로써 내부적인 불안해소를 하고 있음을 본다.
『그는 슬픔이 크면 클수록 도리어 이에 반비례하여 더욱 명랑하였으며 한층 그의 독특한 해학을 연발하는 것이었다.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판처럼 늘어놓고』(윤태영·송민호‥이상의 생애와 문학)
이러한 정신분열증적 성격형성은 자기자신에 대한 공격(masochism)과 외계에 대한 공격을 동시에 감행하는 sado-masochism적인 요소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이 분열증의 증상으로 이행되었던 것이다.

<주1>정태용‥이상의 인간과 문학(예술원보 제3호 P130)

<주2>송민호‥이상문학단평(중등교육자료1971 PP23∼27) 송민호‥절망은 기교를 낳고, P130·P145

<주3>백철‥조선신문학사조사 P242

<주4>「카프카」의 소설 『성』의 주인공을 자폐증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음

<주5>한동세‥정신과학 P61

<주6>김옥희‥신동아 1964년12월호 P314

<주7>Noyes, Modern Clinical Psychiatry P385 <계속>

<차례>
일, 서언
이, 자의식과 자의식문학
삼, 이상의 생활과 해체의 동기
사, 이상의 문학과 난해의 한계성
오, 사족

<당선소감>겨울 속에서 희망의 싹은 자라고…알찬 공부…평단에 기여할터
1
인동 잎을 물고 온 새가 새해의 아침을 인사한다. 우울한 겨울 속에서도 희망의 싹은 자라고, 나의 문학수업이 무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2
잡아줄 손과 밀어줄 마음들이 항상 문학의 이방지대를 걷고 있었던 문학부재의 자리에서, 시시한 잡담에 섞이기 싫어했던 내심의 결정.
그것은 지금 나에게 새로운 출발의 신호를 울려 준 것이다.
3
작품 내놓기를 무척이나 주저했던 긴 도피의 생활은 이제 종언을 고하고 있다. Freedom to가 아니라도 나의 소극성은 지양되어야 한다. 좀더 알찬 공부를 해서 우리의 평단에 보다 많은 기여를 해야겠다. 이것이 소극성을 지양한 나의 자세가 될 것이다.
4
문학의 방향을 항상 올바르게 제시해 주시고 지도와 편달을 아끼지 않으신 김춘수 선생님과 박양균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한 이 당선의 기쁨을 친구들 및 직장동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끝으로 변변치 못한 글을 심사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약력>
▲1939년 경북경주출생▲대구사범학교본과졸업(1958년)▲영남대학교국문학과졸업(1965년) ▲경북대학교대학원국문학과졸업(1969년)▲칡넝쿨 동인▲대구대륜고교교사▲대구시동구효목동 효목「아파트」8동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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