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찬 귀성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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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새해는 더욱 분발하렵니다.』―31일 상오 귀성객들로 붐빈 서울역3번「홈」엔 구두닦이 이덕수군(19·전북전주시전미동420)이 고향에 다녀오기 위해 귀성열차를 기다렸다. 4년 동안 구두닦이로 30만원을 저축, 올해 처음 연휴를 고향에서 즐기기 위해 떠나는 이군에게는 「보람찬 귀성길」―.
새해에는 더욱 다기찬 노력을 하겠다는 이군의 결의였다. 『이번에 내려가면 그동안 모은 돈으로 부모님께 전당뒷골터 논 7백평을 사드리고, 싸게 올라와서 또 일해야죠』 이군의 늠름한 얼굴에는 묵은해의 고달픔은 가시고 새해에의 기대가 넘치는 듯했다.
이군은 지난 20일 『오는 정초에 모처럼 일손을 쉬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의 얼굴을 보러 내려가겠다』는 편지를 오랜만에 부쳤다. 푼돈을 모아 의누나 이윤정씨(30·동대문구 휘경동 167의27)에게 이자를 늘려달라고 맡겨두었던 30만원 가운데 20만원을 찾았다.
그의 고향에는 품팔이하는 아버지 이만준씨(60)와 어머니 송안자씨(52) 그리고 동생 동수군(13) 경희양(11) 등 4식구가 4마지기의 논에 매달려 어렵게 살고있다.
이군은 고향에서 해성중학 2년을 다니다 학비를 낼 길이 없어 지난 67년10월 홀몸으로 상경했다. 처음 상경했을 때는 서울역 대합실에서 새우잠을 자며 무척 고생, 설움도 겪었다.
이군이 구두닦이를 시작한 것은 그해 12월. 관할 남대문경찰서 소년계 정길자 순경(26)이 이군의 사정을 듣고 구두통을 마련해 주었다. 모처럼 일자리를 얻은 그는 하루평균 1백50켤레의 구두를 닦으면서도 괴로운줄 몰랐다. 새벽 6시부터 하오 10시까지 쉬지 않고 닦아야했다. 「라면」으로 끼니를 잇기가 일쑤이고 남는 돈은 정 순경에게 맡겼다.
정 순경은 이돈으로 계를 들어 69년1월 처음으로 이군에게 5만원의 목돈을 안겨주었다.
그는 이 돈을 우체국에서 의누나를 맺은 이윤정씨에게 맡겨 이자를 늘려왔다.
이군은 계속 남는 돈을 정 순경에게 맡겨 곗돈을 댔다.
저축이 늘어가고 자리가 잡히자 이군은 지난 69년 남산공고 화공과 야간부에 입학, 밤에는 공부를 하고 낮에는 구두를 닦았다.
자리가 잡히면서 지난해부터는 한 달에 많을 때는 1만원씩도 저축할 수 있게됐다.
학교에 입학한 그는 교복을 입고 서울역대합실이나 경찰서보호실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지난 8월 정 순경과 상의 끝에 성북구 석관동333의124 임용순씨집 10만원짜리 전세방을 얻어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밥을 해먹고 점심으론 도시락을 싸들고 일자리인 서울역전에 나왔다.
지난 11월1일 정 순경은 곗돈10만원을 또 찾아 주었다. 이씨에게 맡겨두었던 5만원도 그동안 10만원으로 늘어났다. 그사이 간간이 고향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세모가 가까와오자 새해만은 고향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부모님 및 동생들과 함께 지내보고 싶어졌다.
지난 20일 20만원을 찾아 쥔 이군은 고향을 다녀오기로 작정, 그 길로 남대문시장엘 나가 아버지가 즐기는 술 1병, 신탄진담배 10갑을 샀다. 추위에 떨고있을 어머니를 위해 누비치마저고리 1벌을 1천8백원에 샀다.
이번에 아버지께 텃논을 사드리고 나면 내년에는 더 돈을 모아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괴로움은 꾸준한 인내로 참을 수 있어요. 연휴가 지나는 대로 올라와 또 열심히 구두를 닦을 뿐입니다』-. 상오 10시20분 전라선 61열차를 오르는 이군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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