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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세|"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사경 10시간|살아난 최후의 일인…여선영 중국공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11층 창틀을 부여잡고 끈질기게 버티기를 10시간-. 발을 동동 구르며 불길을 지켜보던 수십만 시민들로부터『저 침착한 사람』이라고 감탄을 받던 그 사람은 주한중국대사관 공사 여선영씨(64)였다. 25일 밤8시『11층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한 소방관의 외침은 바로 생명의 끈질김과 존엄성을 알려주는「인간만세」의 극적인 순간이었다.

<병원에서 기도수술>
열기 속을 헤치고 11층까지 훑어 올라가던 중부소방서 이영흥 경감(44)등 3명의 소방관들이 1104호실에 들어섰을 때 한쪽 구석에 타월을 쓰고 꿈틀거리는 물체를 보았다. 순간 이 경감이『누구요』하고 묻자 영어로『나는 중국인입니다. 이름은「유·생·융」,나이 64세.』 8시15분 급히 메디컬·센터 응급실에 옮겨진 여 공사는 시종 침 착을 잃지 않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응급치료 후 밤 10시30분쯤 여 공사는 이비인후과 주 양자 박사의 집도로 기도수술을 받고 회복실에서 안도의 수면을 취했다.
여공사가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창가에 매달린 생존자가 모두 질식했거나 땅바닥에 떨어져 죽어간 12시10분쯤부터이었다. 다른 투숙객들이 매트리스를 안고 뛰어내렸지만 여씨는 숙소인 11층 1104호실에서 태연하게 손으로 구조신호만 보냈다. 여 공사가 있는 11층은 고가사다리가 미치기에는 너무 높았고 헬리콥터가 활동하기에는 너무 낮은 어중간한 위치였다.
헬리콥터 구조대원들은『기다 리라. 로프를 던져주겠다』고 안심시키면서 세 번, 네 번, 계속 접근을 시도했으나 1천도의 열이 뿜어 나와 연료탱크의 폭발을 우려,『구조가 불가능하다』는 무전을 지상에 보내왔다.
하오 1시45분쯤 불길은 11층 서쪽에서 여씨 방 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여 공사는『살아 있다』는 신호를 하려는 듯 간간 히 창가로 얼굴을 내보였다.
하오1시50분쯤 여공사가 세 번째로 모습을 나타냈을 때 그는 뛰어내리려는 듯 모포로 손을 감싸고 뜨거운 알루미늄 창틀을 잡고 창가에 올라섰다. 이때 구조대원들은 손을 저으며 마이크로 『무모하다. 당신의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기다 리라』고 방송했다.
하오2시쯤 고가 사다리 차 위에서 밧줄을 던지기 위해 총 류 탄 2발을 쏘았으나 한발이 10층에, 다른 한발은 줄이 끊어져 실패, 헬기가 로프가 달린 가스탄을 쏘았으나 그것도 빗나갔다.

<욕탕에 들락날락>
하오 3시26분 여씨는 네 번째로 잠깐 모습을 보이고는 잠잠했던 것이다. 여씨는 25일 아침 9시30분쯤 운전사가 갖다준 영자신문을 읽다가 불이 나자 아이들 사진과 크리스마스에 보내온 카드와 서류뭉치를 챙기고 비상구로 뛰었으나 불기둥이 솟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곧 욕실의 냉수를 틀어놓고 벽과 바닥에 물을 끼얹어 불길을 막았으나 2시쯤엔 수도관이 터졌는지 물도 끊기고 여기저기서 우지끈 소리가 요란했다는 것-.
다시 온몸에 올리브유를 바르고 냉수가 담긴 욕조 속을 들락날락 하기도 했으나 잠시 후 욕탕 물도 뜨거워져 더 이상 견딜 수 없 자 마지막으로 모포를 물에 적셔 둘러쓰고 바닥에 엎드렸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구조방법이 실패를 했지만 반드시 산다고 믿었습니다. 내방에 물줄기를 대준 소방관은 내가 창가에 갈 때마다 두 주먹을 들어 보이며 꼭 구할 테니 용기를 내라했고 헬기의 구조대원도 두 손을 모으며 힘을 내라고 격려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며 악몽 같은 당시를 설명했다.

<30년 직업 외교관>
여 공사는 중국 호 남성 출신 70년 한국에 부임, 가족으로는 1남1녀가 미국에서 공부하고있고 부인은 5년 전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는데, 그는 대만대학 영문학교수도 역임한 대사관 제1의 영어실력을 구사하는 30년의 직업외교관이다. <고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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