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상의 여-야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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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보위법안을 놓고 여-야는 대화를 시작했다. 백남억 공화당의장은 24일 낮 1시 국회본회의장에 농성중인 신민당의 김홍일 당수를 찾아갔다. 백 두진 국회의장도 25일 아침 국회서 밤을 샌 김 당수를 찾아가 만났다. 현오봉·김재광 두 여-야 총무도 24일 두 차례, 25일 한차례 만났다.
그러나 대화는 평행선을 긋고 있다.
김 신민 당수와 만난 뒤 백 당의장은 성과를 질문 받고『유행가 가사와 같이「너와 나 사이에 큰바다가 있어서」정도』라면서 책상 위에 놓인 담배케이스를 열어 뚜껑과 속을 책상 양쪽 끝으로 메어놓고『이런 상태』라고 여-야의 거리를 솔직히 털어놨다.
백 두진 국회의장과 김 신민 당수와의 대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야간의 공식대화 채널인 총무회담도 진전이 없었다. 24일 낮 11시쯤 여-야 총무 단은 국회의장 실서 마주 앉은 채 한동안 침묵하다가 장경순 부의장의『웃어봅시다』로 말이 시작됐다.
『현오봉 총무가 시간을 안 지켜 납치된 줄 알았다.』(정해영 부의장),『공화당 덕분에 세계에서 제일 큰 호텔 방에서 잤다.』(한건수 신민당 부 총무),『국립호텔에서 잤으면 영광이 아니오.』(여임식 공화 부 총무), 이런 말이 오간 뒤 현 공화당총무가 우리주변정세·심각한 안보문제 등 보위법안을 제정해야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현·김 두 여-야 총무가 별실에서 바로 만나고 있는 동안 백 두진 의장과 장부의장은 크리스마스 휴전을 제의했다.
공화당은 24일 밤, 성탄절인 25일 그리고 일요일인 26일 사흘동안 보위법안의 단독 심의를 않겠으니 신민당도 의사당농성을 풀고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라는 것이었다,
이 제의에 대해 신민당 측의 정 부의장도『전쟁당사자간에도 성탄휴전이 있는데 우리라고 못하겠느냐』고 했지만 의사당서 이 소식을 들은 신도환, 이중재 의원 등은『사흘동안 고생을 덜하는 것은 좋으나 휴전해 봐야 무슨 접근이 있겠느냐』는 말을 총무 단에 전했다. 그래서인지 현오봉 총무가『공화당의 약속을 믿고 집에 들어가 쉬 라』는 권유에 김재광 총무는『우리가 어떻게 하든 그건 상관 마시오』라고 퉁명스레 받아 이 문제마저도 합의를 보지 못했다.
김진만, 김용태, 차지철 의원을 비롯해서 많은 공화당 간부들이 평소 친분이 두터운 야당의원들을 만나 설득을 하고있다.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의 심의 때문에 국회에 계류 중이던 일반법안의 심의는 보류상태다.
국방위에서 정부의 제안설명과 전문위원의 심사보고를 끝낸「군사기밀보호법안」「군사시설보호법안」「징발법개정안」등은 이 법안이 나오면서 심의가 중단됐고 공화당 안에서는 철회될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신민당이 내놓은 인신보호법 안 등 5개 정치법안은 예산회계법개정안만이 경제과학위의 심의를 끝냈을 뿐 나머지 법안들은 상임위심의에 걸려있는 상태.
당초 공화당은 이번 회기 안에 상임위에 걸려있는 다른 일반 법안 40여 개도 함께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보위법안으로 다른 의안의 이번 회기처리는 불가능.
법안심의에 쫓기면서도 세모엔 캘린더·연하장 등을 만들어 지구당 등에 돌려야 하는 것이 의원들이다.
그러나 여-야 의원 모두가 돈이 없다. 공화당의 경우 정부의 서정쇄신정책과 공화당의 긴축재정 등으로 소속의원들에 대한 활동비 지원은 빈약한 형편.
공화당은 원칙적으로 연하장이나 크리스마스·카드는 주고받지 못하도록 지시하고 있어 지구당에 캘린더만을 보내고 있다. 어느 야당 의원은 세모에 쓰기 위해 국회사무처에 1백만 원의 세비가불을 신청했으나 가불금지 원칙 때문에 받아쓰지 못했다.
공화당 소속의원들도 연초의 귀성활동비는 따로 마련해야한다는 처지들이고 야당의원은『활동을 할 수 있어야 세모인사라도 할텐데…』라고 푸념. <심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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