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햐· 칸」의 불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파키스탄」대통령「야햐· 칸」은 기어이 하야하고 말았다.「아유브·칸」으로 부터 정권을 인수한지 불과 33개월 만이다. 「아유브·칸」이나「야햐·칸」이나 모두 의회제도를 무시한 점에선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아유브· 칸」은「민주주의」라는 단어에「기초적」(basic)이라는 수식어를 하나 붙였다가 결국 물러나고 말았었다.「아유브·칸」은 집권 10년만에 헌법제정,언론의 자유,의회 내각제의 복귀를 절규하는「데모」에 직면했었다.
지금「야햐·칸」의 후임으로 취임한「부트」는 그 당시 지도자였다.그러나 대통령의 퇴임 1년 앞두고 그는「아유브·칸」에 의해 투옥되었다.「부트」가 옥중 출마를 한동안 군중들은 유혈「데모」를 벌이고, 노동자들은「스트라이크」를 일으켰다. 속「파키스탄」에서도 폭동이 일어나「파키스탄」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이미 대학들은 폐교가 되어있는 형편이기도 했다.
「아유브· 칸」 은 하는 수 없이 초의 대통령 재출마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야햐·칸」은 바로「아유브·칸」의 최고 신임을 받는 군인이었다.직속은 육군사령관인 대장.그는 집도하자,우선 계엄령부터 인도했다. 이 계엄령 하에서 「데모」를 하거나 파업을 하면 17년 이상에서 사형에 이르는 중형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야햐·칸」에 대한「파키스탄」국민의 기대는 반드시 「케로」상태만은 아니었다. 그는 집권 공약으로『모든 상황이 평화로와질 매태법 제정과 함께 정치는 지세없이 정치인에게 돌려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군가 지칭한 「정치인」은 자신을 두고 하는 얘기했다.「야햐·칸」은 비록 군인의 몸이지만,이미 개혁군인 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초속진급으로 그의 위에 상급자가 7인이나 있었는데,3년 만에 이들을 모두 앞질러 버렸다.2차 대전엔 영국군인으로 참전,한때 독일군에 포로가 되었었지만,탈출에 성공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 당시 함께 탈출했던 유일한 인도인전우가 지금은 인민군의 장성이 되어 이번엔 「마키스마」작전에 나섰다.
비록 그는 아유브·칸의 신임은 받았지만,정권인수 이후엔「아유브·칸」과는「네거티브」(부정적)한 정책을 모방했었다.그에 대한 일말의 정치적 기대가 있었다면 그 점이었다.
그러나 그의 정권위협에 직면하자「야햐·칸」도 한계를 보여주었다.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이 비상에서 확대되자 그 총질자체를 우상화하고 말았다.「파키스탄」의 정부 악종환을 보고 누군가는『고양이들이 꼬리를 서로 묶고 있는 것 같다』 고 풍자했었다.『민심을 우롱하는 한 유혈분쟁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인도는 이번 가유를 이렇게 말하고있다.「파키스탄」에겐 뼈아픈 소리일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