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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된 불확실성 한 푼까지 계산해 통제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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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호 23면

#1. 2009년 2월 11일 중국 신화통신은 대형 국유건설사 중국철도건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시(市)가 발주한 17억7000만 달러(약 2조4600억원)짜리 모노레일 공사를 따냈다는 속보를 내보냈다. 이 프로젝트는 이슬람 성지인 사우디 메카 지역과 주변 도시인 미나~아라파트~무즈달리파 등을 잇는 18.06㎞ 구간에 모노레일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개통이 되면 시간당 7만2000명의 승객을 수송하는 대형 사업이다. 후진타오 당시 중국 주석과 압둘라 사우디 국왕이 이날 계약을 지켜봤을 정도로 국가적 관심도 높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들려주는 ‘경영의 한 수’ ⑧ 글로벌 기업을 통해 본 수주산업의 ‘리스크 관리’

#2. 2010년 10월 25일 중국철도건설은 메카 모노레일 건설 사업에서 6억8200만 달러(약 7200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공시했다. 이 회사 전년 순이익의 60%가 넘는 큰 금액이었다. 다음날인 26일 중국 본토 주식시장 개장 직후 중국철도건설의 주가는 6% 급락했다. 홍콩에 상장된 H주도 12% 넘게 폭락했다. 중국철도건설은 메카 모노레일 프로젝트를 일괄도급(EPC turnkey)으로 수주했다. 일감을 수주한 업체가 설계(engineering), 구매(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을 모두 책임지는 방식이다. 중국철도건설은 그해 미국 건설전문지 ENR(Engineering News Record)이 매긴 전 세계 건설사 순위에서 매출 기준 세계 1위로 꼽힌 초대형 업체다.

하지만 중동에서의 사업 경험이 많지 않았다. 현지의 관습이나 업무 처리방식을 잘 알지 못했다. 더구나 애초부터 난이도가 높았지만 공사기간이 짧았던 프로젝트였다. 예상 못한 변수를 만나면서 비용이 늘어났고 공사기간이 지연된 것이 대규모 손실로 이어졌다.

‘제2의 중동 붐’이라고 했다. 2009년 이후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 같은 중동 지역에서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잇따라 발주됐다. 10년 동안 지속된 고유가 덕에 중동 각국 정부의 돈주머니가 두둑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대형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일감을 따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다. 하지만 공사를 시작한 지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준공 날짜가 다가오면서 ‘웃는 자’ 와 ‘우는 자’가 갈렸다. 중국철도건설처럼 프로젝트에서 대형 손실을 보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예상 못한 상황, 대규모 손실로 이어져
한국 기업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삼성엔지니어링·GS건설·SK건설·대림건설 같은 한국의 대형 건설사들도 유사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설계가 바뀌고 공기를 맞추지 못하면서 일감을 따낼 때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하는 족족 손실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건설뿐만 아니라 조선해양·플랜트 등 거의 모든 한국의 대형 수주 기업 사정이 다르지 않다.

더 넓은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공사 분야와 지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다. 낯선 땅에서 경험이 누적되지 않은 공종(공사 내역을 결정하는 주요 공사 종목·construction type)으로 영역을 넓히다 예상하지 못한 각종 변수에 맞닥뜨리게 됐다. 국내 업체끼리 수주 경쟁을 벌이다 가격을 낮춘 것도 문제였다.

상품을 먼저 생산한 다음 판매하는 대신 주문을 받고 나서 생산을 시작하는 기계ㆍ조선ㆍ건설 같은 수주 산업은 상품 개당 단가가 거액인 데다 상품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 그래서 원래 계획한 예산·납기·품질을 맞추는 것이 수주 산업의 핵심이고 본질이 된다. 하지만 이런 핵심을 지키기가 점점 어려운 환경이 되고 있다. 즉 리스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리스크가 크다고 일감을 따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프로젝트를 수익성 있게 운영할 비법은 뭘까. 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들여다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프랑스의 플랜트 기업 테크니프는 ‘원유에서 가스ㆍ석유화학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게 없는 만능 회사’로 불린다. 만능이라고 하니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다할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다. 테크니프는 프로젝트의 불확실성이 크면 미련 없이 입찰을 포기한다. 승산 없는 싸움은 아예 벌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확한 승률 예측이 필요하다. 이 기업은 입찰 전 예상 비용을 산정할 때, 예상되는 각종 불확실성을 계량화해 반영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기자재 물량과 가격이나 설계와 생산상의 불확실성에 따른 비용은 물론이고 공정이 변경되거나 다른 기능이 지연됨으로써 발생할 불확실성도 비용으로 계산한다.

시장 상황이나 자금조달 환경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외부 환경의 잠재 불확실성까지 모두 계산해서 더한 ‘비상 상황’(contingency)의 정량화 시스템이다. 이를 ‘컨틴전시 기반 가격산정’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A프로젝트의 실제 예상 원가가 1100억원으로 추산됐다. 컨틴전시 비용을 추산했더니 130억원이 더해졌다. 프로젝트에서 얻을 수 있는 마진은 70억원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의 최종 ‘가격’은 200억원을 더해 1300억원으로 정하는 방식이다.

테크니프의 경우 컨틴전시 비용이 예상 원가의 30%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되면 원칙적으로 입찰을 하지 않는다. 매출 규모만 키우기보다 수익, 즉 실속을 택하는 것이다.

리스크를 돈으로 환산하라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중요하다. 불확실성까지 반영한 비상 계획에 기반해 가격을 산정한 결과 입찰할 만한 프로젝트로 판단돼 입찰에 들어가 그 일을 따냈다면 이제부터 할 일은 불확실성을 철저히 통제·감시하는 것이다. 준비 단계에서는 이제껏 해 왔던 프로젝트와 이번 프로젝트가 무엇이 다른지를 전부 목록으로 만든다. 이때 사소한 것 하나라도 빼놓지 않고 촘촘하게 목록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목록을 기초로 이전과 다른 상황이 사업 수행의 어떤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한다. 설계면 설계, 생산이면 생산, 기자재 구매면 구매와 같이 기능별로 관련 있는 모든 담당자에게 이를 공유시킨다.

다음 단계는 ‘핵심 경로’(critical pass)를 규정하는 단계다. 예를 들어 배를 만든다면 선체 제작 공정(module) 외에도 용접·도장·선실 인테리어 등과 같은 수많은 경로가 있다. 큰 프로젝트에서는 모든 공정이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어떤 작업이 지연될 경우 파급 효과가 커서 전체 프로젝트의 진행을 좌우하는 몇몇 치명적인 공정이 있다. 이를 핵심 경로라고 부른다. 이를 규정해서 집중적으로 감독·관찰해야 한다.

이탈리아 건설사 사이펨은 전체 인력 중 30%에 해당하는 고숙련 인력을 따로 상시 확보하고 있다. 이들은 핵심 공정 전문가들로 임금도 직원 평균보다 세 배 더 높다. 동시에 회사 밖에도 고숙련 인력 풀을 운영한다. 이렇게 회사 안팎에 기동팀(task force team)을 운영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전사적으로 시공 과정 중에 발생한 병목을 통합 관리한다. 이 병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손실액은 얼마인지, 발생 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놓고 회사 전체에서 발생한 문제 중에서 얼마나 치명적인 병목인지 점수화해 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 기업 차원에서 리스크를 정확히 이해하고 계량화한 결과를 바탕으로 준비된 기동팀을 순차적으로 배분해 가장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요컨대 모든 것이 사전에 계획한 대로 진행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계획과 달라졌을 경우 발생할 상황에 대한 계산과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준비된 변수는 변수가 아니다
공기가 하루 지연되면 비용이 얼마나 더 발생하는지 모니터링하는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프로젝트 초기부터 비용과 일정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가능해진다. 또 사이펨에서처럼 내부적으로 설계와 생산 부문 안에 리스크 관리를 전담하는 기동팀을 반드시 운영해야 한다. 문제 발생 즉시 필요한 요소에 이들이 투입돼 빠른 속도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리스크 관리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대부분의 한국 수주 산업이 성장통을 겪고 있다. 난관을 헤쳐나갈 핵심 키워드는 리스크 관리다. 많은 기업의 경영자가 리스크 관리의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이를 구체화해 시스템으로 갖추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작은 규모의 익숙한 공사는 경험 있는 일부 인력이 맡아 관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의 대형 공사로 확대·전환되면서부터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선 제대로 리스크를 관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 기업도 하루빨리 프로젝트 관리 인력과 리스크 전담 인력을 갖추고 무엇보다 사내에서 이를 시스템화해야 한다. 그래야 해외 사업장에서 수행한 프로젝트가 훗날 손실로 되돌아오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한 단계 ‘레벨 업’할 수 있는 길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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