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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 경쟁 서청원·김무성, YS식 ‘대화 정치’ 펼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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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청원 의원(오른쪽)이 지난 4일 새누리당 의원총회 때 김무성 의원과 포옹하고 있다. [뉴스1]

4일 오후 국회 본관 246호. 10·30 재·보선 이후 처음으로 새누리당 의총이 열렸다. 서청원 의원은 개회 10분 전인 오후 1시50분 도착했다. 뒤이어 들어오던 김무성 의원이 그를 보자마자 “아이고” 하며 포옹하려는 포즈를 취했다. 서 의원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를 껴안고 등을 토닥였다.

 집권 여당의 최고 실세이자 암묵적 경쟁자로 부상한 두 사람의 이런 모습은 상도동계 선후배라는 인연 덕분에 가능했다. 두 사람은 과거 김영삼(YS) 전 대통령 문하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이에 최근 정치권에선 “상도동계의 귀환”이란 말이 회자된다.

 두 사람은 모두 1984년 YS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서 정치 경험을 쌓았다. 서 의원은 이후 통일민주당 대변인, 총재 비서실장을 맡아 YS의 측근으로 부상한 뒤 김영삼정부에서 정무 제1장관, 신한국당 원내총무를 맡으며 실세로 부상했다. 김 의원도 청와대 민정·사정비서관에 이어 최연소 내무부 차관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두 사람은 YS의 뜻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을 돕게 된 역정도 닮았다. 2007년 대선 경선에서 김덕룡 전 의원 등 상도동계 다수는 이명박 후보에게 마음을 둔 YS의 뜻을 따랐다. 그러나 서·김 의원은 다른 길을 택했다.

YS 뜻과 달리 ‘박근혜 지원’ 닮은 꼴
서 의원의 평전 ?우정은 변치 않을 때 아름답다?에 따르면 YS는 서 의원이 2007년에 박 대통령을 돕겠다고 하자 극력 반대했다. 하지만 서 의원은 “박근혜 (당시) 후보가 먼저 나를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고,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사나이가 일구이언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박 대통령을 도왔다. 김 의원 역시 2005년 박근혜 당 대표 시절 사무총장을 맡으며 인연을 맺은 뒤 박근혜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으로 일했다. 당시 YS가 이명박 후보 지원을 권유하자 김 의원은 “내가 박근혜 캠프에서 나가면 배신자 소리를 듣게 되는데 YS 수하가 어디 가서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 좋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현재 박 대통령과의 관계에선 차이가 있다. 김 의원은 2009년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박 대통령과 갈등하며 ‘탈박(脫朴)’을 했다. 지난해 대선 때 당 총괄선대본부장으로 ‘복박(復朴)’을 했지만 아직 박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가 회복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평이다. 특히 김 의원은 차기 여권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하고 있어 현 정부 눈치를 보기보다 향후 세력화에 힘쓸 전망이다. 반면 서 의원은 이번에 국회에 입성하면서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싶다”고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로선 당·청과 대야관계를 노련하게 다룰 수 있는 서 의원에게 기대가 큰 상황이다. 나아가 차기 당권에 도전하는 김 의원을 견제하는 역할을 서 의원이 해 주길 바란다는 말도 돈다.

 이처럼 두 사람은 앞으로 서로 다른 길을 갈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주에도 대조적인 행보를 보였다. 서 의원은 6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 7일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 등 가는 곳마다 “늦깎이 초선이 인사 드린다”며 몸을 낮췄다. 하지만 안전행정부와 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 차관과 화성시장이 잇따라 그의 사무실로 찾아왔고 보좌진에겐 행사초청장, 축사요청서가 쇄도했다. 서 의원은 야당 중진들과도 수차례 통화하고 회동했다. 이 때문에 그의 일정은 30분 단위로 쉴 틈 없이 이어졌다. 특히 5일 밤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열린 경기도 지역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만찬엔 전체 21명 의원 중 20명이 참석했다. “당의 실세 서 의원을 중심으로 내년 6·4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고 정당공천제 폐지를 막자”는 논의가 오갔다고 한다. 서 의원은 이에 대해 “내가 얘기할 때가 아니다”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서 의원 측 관계자는 “서 의원이 당 대표에 나오란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반면 김무성 의원은 4일엔 자신이 발의한 ‘국가재정법’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고, 6일엔 ‘근현대사 역사교실’을 열어 정책·공부모임에 집중했다. 근현대사 역사교실엔 의원 45명이 참석했지만 정책토론회에는 의원 10여 명이 찾는 데 그쳤다. 당 지도부나 동료 의원들의 축사도 생략했다. 김 의원 측은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하는 것뿐인데 자꾸 곡해하는 기사가 많이 나와 포스터만 붙이고 의원들을 초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11일엔 조찬모임을 하고 고령화사회의 대안을 연구하는 ‘퓨처라이프포럼’을 발족할 예정이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서 전 대표와 힘을 합칠 것”이라면서도 “당권에 도전할 상황이 되면 뒤로 빠지진 않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당 주도권을 놓고 경쟁이 예상되는 두 사람이지만 뿌리가 ‘상도동계’라는 끈은 서로를 이어 주고 있다는 평이다. 특히 ‘상도동계식 정치’의 전통이 향후 정국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리란 전망도 나온다. 역시 상도동계 출신인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요즘 정치권에선 툭하면 여야가 대화의 문을 닫지만 상도동계식 정치는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하자는 것”이라며 “형님 아우로 부르며 어우러지던 인간적인 문화도 있다”고 말했다. 김기수 YS 비서실장도 “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람보다는 국민에게 오랜 세월 검증된 인사가 정치를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라며 “서·김 의원 등 노련한 상도동계가 전면에 나서는 건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대야 관계 등에서 정치복원에 기여할 것”
다만 정작 서·김 의원의 주변에선 서로를 상도동계로 묶거나 경쟁관계로 보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기류도 있다. 서 의원의 측근은 “YS 활동 당시 서 의원은 이미 국회의원이었던 반면 8세 어린 김무성은 YS의 보좌관(비서실장)이었다. 같이 묶을 ‘급’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의원실 관계자도 “서로 친하거나 정치 행보를 같이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여권의 한 관계자는 “서로 잠정적 경쟁관계인 상황에서 ‘상도동’이란 프레임으로 엮이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라며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뿌리를 부정한다고 보이는 건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고 평했다.

 반면 한때 상도동계의 좌장이던 김덕룡 전 의원은 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지난해 대선 때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데 이어 야권과 연대하는 세력화를 추진하고 있다. 같은 상도동계인 심완구 전 울산시장, 문정수 전 부산시장과 동교동계의 권노갑·정대철 민주당 고문 및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 등과 별도의 결사체 ‘국민동행(가칭)’을 11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출범시킬 예정이다. 정치권에선 이 단체가 안철수 의원과 연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정대철 고문 등 일부 참여 인사가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은 합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기존 정파와는 독립적인 시민운동을 하려고 한다”며 “특정 정당과 관련 있는 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또 ‘제2의 민추협’이란 시각에 대해서도 “굳이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이 단체가 향후 지방선거, 대선에서 친야권 성향의 목소리를 낼 거라 보는 이들이 많다. 여권 실세로 전면에 부상한 서·김 의원과는 또 다른 상도동계의 분화를 보여 주는 셈이다. 이에 대해 김기수 실장은 “모두가 각자 자기 길을 가는 것인데 YS가 뭐라 할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

백일현·류정화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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