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없는 성장 배경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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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위기 후 우리 기업들은 체질 개선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이른 시간 내 경쟁력을 회복했다. 하지만 이런 기업 실적은 고용으로 이어지지 못해 '일자리 문제'라는 숙제를 남겨 주었다. 기업 경쟁력은 높이되 가급적 사람을 쓰지 않겠다는 전략 때문이다.

매출 상위 50대 기업(금융사 제외)의 2004년 및 1999년 사업보고서에서도 '고용 없는 성장' 추세는 뚜렷이 확인됐다. 5년 전에 비해 매출은 67%, 순익은 215%나 늘었지만 이들 기업이 채용하고 있는 직원 수는 오히려 0.4% 줄어든 것이다.<본지 3월 4일자 1면>

◆전기.전자.통신 업종 고용 증가=50대 기업 중 1999년에 비해 매출이 늘어난 기업은 45개였고, 직원수가 늘어난 기업은 24개였다. 매출과 직원수가 같이 늘어난 기업도 대부분 매출 증가율이 고용 증가율을 훨씬 웃돌았다. 현대자동차는 매출은 14조원대에서 27조원대로 늘었지만 고용증가율은 불과 4.4%에 그쳤다.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성장한 전자 및 정보기술(IT) 업종의 증가세가 눈에 띈다. 삼성전자는 매출 증가율(120%)엔 미치지 못하지만 57%에 달하는 직원 증가율을 보였다. 삼성전자는 5년간 직원 증가 절대수에서 우리나라 기업 중 가장 많은 2만2549명을 기록해 고용 확대에 기여했다. LG전자도 직원 수가 40% 가까이 늘어났다.

휴대전화 시장의 급성장 속에서 LG텔레콤.SK텔레콤.KTF 등 이동통신 업체의 직원수도 비교적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하지만 매출에 비해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IT산업 특성상 고용 기여도는 크지 않았다. 이 세 회사는 지난해 18조7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조사 대상 기업이 올린 총 매출의 4.5%를 차지했지만 직원 수는 8600명에 머물러 전체에서 1.7%의 비중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공기업.건설 등 고용 크게 줄어='공룡'이라는 별명을 지녀왔던 공기업(혹은 민영화된 공기업)이 몸집 줄이기에 나서면서 직원 수가 크게 줄었다. 2000년 민영화된 포스코는 당기 순이익이 99년에 비해 두 배 반이 될 정도로 실적이 좋아졌지만 직원수는 오히려 100명가량 줄었다. 포스코와 비슷한 시기에 민영화한 KT&G도 직원이 11% 정도 줄었고, 두산중공업(옛 한국중공업)은 두산으로 넘어간 뒤 명예퇴직 등으로 군살을 빼면서 직원이 30% 이상 줄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자동화 같은 고용 절약형 투자에 집중하는 데다 핵심 역량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아웃소싱하고 있어 기업 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용은 늘어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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