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악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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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거창에서 새로 발견된 벽화고분 이 언제 것이냐를 밝히는 학자들의 추론은 매우 흥미롭다.
이것이 고려 것으로 보는 이유의 하나는 『색깔이 부드럽고 고려적인 명랑·활달한 표정』을 손꼽고 있으며, 『고구려 벽화의 특징인 우울감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는 데 있다.
또 이처럼 명랑한 표정과 장대한 규모는 몽고의 침입이 있은 다음에는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 11, 12세기의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고구려 때의 작품이 아님은 벽화의 선녀상이 정면도라는 점에서도 짐작된다.
가령 고구려 전성시대의 쌍총의 벽화에 있는 인물들은 모두 측면도였다.
인물을 정면으로 그린다는 것은 원시미술에서는 없던 일이다.
기원전 1천5백년 전의 유명한 「이집트」벽화 <연합장면>에서도 인물들은 모두 「프로필」로 묘사되어있다. 그저 눈만 정면으로 그려져 있을 뿐이다.
「피카소」는 입체감과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이를 본 땄다지만 옛날에는 그렇게 그리는 게 쉬웠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경쾌한 「터치」와 밝은 표정들로 보아 안정된 사회의 소산임에는 틀림없다.
예술은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기 마련이다. 사회가 어지럽고 살림에 시달릴 때에는 밝은 색조나 경쾌한 「터치」의 예술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주악천상>을 고려 초의 것으로 추정하는 데 대한 이론 또한 없지 않은 듯 하다. 우선 이 고분의 현실 양식이 고려시대의 것으로는 예외적이며 그 직립인물상 또한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주악상들의 표정들도 신상이라 보기에는 너무 인간적인 만큼 불교화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불교예술이 틀 잡혀 정형화하기 전이라면 이만큼 인간미가 감돌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겠다. 다만 이처럼 넘치던, 인간미가 그 후의 우리네 예술작품에서 자취를 감추게된 것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이런데서 우리네 문화의 정체성의 까닭을 찾아낼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번 고분벽화가 옛 색감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역시 오랜 풍상 때문에 그 예술성이 제대로 감상되기는 어려운 상태에 있다.
고려 때 것이라고는 하지만 지금부터 9세기 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부터 3천년 전에 「이집트」의 공장이 나무 위에 그린 <아몬의 가수>도 거의 옛 그대로의 모습으로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늦게야 발견됐다는 것보다도 그나마 앞으로 어떻게 잘 보존할 것인가가 우리에게는 더 큰 문젯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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