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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거칠어 보이는 걸까 거친 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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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

“인생에서 보는 많은 일들이 무작위로 일어난다는 믿음을 거부하려는 우리의 의지는 지나칠 만큼 강하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주장이다. 관련 없는 일들을 놓고도 인과관계를 상정한다는 얘기다. 한두 건, 혹 서너 건으로 속단해선 안 된다는 뜻이겠다. 그렇다면 다음의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할까.

 장경욱·윤석열·진영·채동욱·양건 그리고 이석채.

 현 정부 출범 이후, 이유야 어쨌든 ‘항명(抗命)’했거나 반발했다는 꼬리표가 붙은 중량급 인사들이다.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은 김관진 국방장관을 우회해 청와대에 직보했다가 경질된 것으로 알려진 직후 “내가 어떤 죄를 졌는지도 모르고 그 죄에 대해 통보를 받은 바도 없다… (경질은)다분히 감정적이고 인격모독적”이라고 했다. 국민연금을 기초연금에 연계하는 데 항의해 사퇴한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통령이 보고를 잘못 받았기 때문 아닌가 한다”고 했고 양건 전 감사원장은 청와대로부터의 ‘외풍’(外風)을 탓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집권 1년 차에, 아무리 밀려난다손 쳐도 공개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낸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최대석 전 인수위원처럼 경질되고 6개월 만에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도 경질 사유에 대해선 함구해야 하는 게 통상적 행동 준칙이어서다. “무능하다”는 질책과 함께 교체된 청와대 전 수석들도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모르지 않나. 하지만 최근 권력의 동심원 내 곳곳에서 동시다발적 국지전이라도 벌어진 듯하다.

 뭔가 공통의 원인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뭔가 있어 보일 뿐 실상은 없는 ‘카너먼적 현상’일까. 정치권 지인들의 의견을 물었다.

 “매 사안별로 성격이 다르다. 기무사령관 건은 군내 파벌이 문제인 듯하고 채 전 총장은 개인적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돌려치기한 게 아니냐. 공교롭긴 하지만 구조적 원인이 있는 것 같지 않다.”(전 청와대 행정관)

 이들은 소수였다. 공통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다수설을 대화체로 정리하면 이랬다.

 “이명박 정권 초기에 전 정권 사람들을 내보낸다고 어설프게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하다 논란이 된 것처럼, 거칠게 밀어내서 그런 게 아닌가.”(전 청와대 행정관)

 “정권교체된 그때와 달리 이번엔 대통령을 지지했고 나름 역할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일 텐데, 배신감만큼 사람을 속상하게 하는 게 없지.”(정치평론가)

 “사전에 불러다 얘기하면 공직자는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데 그런 과정이 없었던 듯하다.”(관료)

 “인사를 화나서 한 듯 보이게 한 건 대통령 주변의 잘못이다. 누그러뜨려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증폭시켜 처리한 듯하니….”(새누리당 의원)

 김영호·조보근. 자리를 지킨 이들의 ‘과욕비례(過慾非禮)’는 또 어떤가. 정치권은 물론 정부로부터도 독립성이 강조되는 감사원의 사무총장이 ‘친박계’로 공인되지 않나, 현직 중장이 “군에서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려) 했으면 이 정도로 했겠느냐. 60만 명을 동원해 엄청나게 했을 것”이라고 호기를 부렸다.

 언뜻 보면 정상은 아니다. 그러나 본질은 그리 단순하지 않을 터. 분명한 건 민심이 느끼는 바가 점차 진실로 여겨질 것이란 점이다. 그런 후에 권력이 아무리 오해라도 외쳐본들 반향이 없을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 일부라도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시키는 일만 해야지, 다른 견해를 밝히거나 다른 편이라고 여겨지면 매정하게 잘린다”고 여기기 시작했다면 정권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이미 인사로 좋은 평가를 못 받지 않았나. 교체마저 옛 방식으로 여겨져선 곤란하다.

 가장 생산적이어야 할 1년의 전반기를 인사 지연으로, 후반기를 인사 잡음으로 소모할 뿐 아니라 한창 일해야 할 공직사회에 복지안동(伏地眼動)만이 살 길이란 인상을 주는 것 같아 하는 소리다.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