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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해산심판 주심에 이정미 … "법리적 완결 중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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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청구 사건의 주심을 맡게 된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6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 재판소에서 나오고 있다. [뉴시스]

헌정 사상 첫 정당해산심판청구 사건의 주심을 여성 헌법재판관이 맡았다. 이정미(51·사법연수원 16기) 재판관이다. 이 재판관은 전효숙 전 재판관에 이어 헌재 사상 두 번째로 임명된 여성 재판관이다. 울산 출신으로 마산여고·고려대 법대를 나왔다. 이 재판관은 2011년 3월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에 의해 지명됐다. 헌법재판관이 지나치게 서울대 출신 남성 고위 법관 출신들로 채워졌다는 비난 여론을 반영한 인사였다.

 이 재판관은 5기 헌재에서 비교적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낸 공직선거법상 ‘사후매수죄’ 규정 위헌사건에서 송두환·김이수 재판관과 함께 위헌 의견을 냈다. 다수 의견은 합헌이었다.

 헌재 내부에선 “이 재판관이 소수의견을 자주 내긴 했지만 무조건 진보성향이라기보다 사안에 따라 법리적 완결성을 중시한다고 보는 게 맞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8월 낙태죄 헌법소원 사건에서는 박한철 소장 등과 함께 합헌 의견을 내 ‘산모의 자기결정권’보다 ‘태아의 생명권’을 중시하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 내 유일한 여성 재판관으로서 소수자 문제에 대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연구관들을 다그치기보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아가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과 달리 헌재 재판에선 주심 재판관이 결정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9명의 재판관들이 각자 동등한 의견을 낸다. 하지만 주심 산하의 연구관이 사건 내용을 주로 검토해 재판관들에게 보고를 하기 때문에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이날 사건 배당은 무작위 전자추첨으로 이뤄졌다. 헌재 ‘사건배당에 관한 내규’에 따르면 일반사건은 전자추첨을 하지만 주요 사건은 재판관 협의로 결정하게 돼 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청구사건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건인 만큼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전자추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일단 7일 열리는 평의(評議·재판관 전원이 참석하는 회의)에는 공식안건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막 심리절차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재 내부에서는 “5기 헌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만큼 평의에서 어떤 식으로든 언급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헌재 연구관들은 이 사건에 대한 기대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한 연구관은 “70여 명의 연구관 전원이 투입될 수 있으니 준비하라는 지침이 있었다. 2004년 대통령 탄핵심판 때에도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연구관도 “대통령 탄핵심판이나 행정수도 이전 헌법소원 사건이 행정공백을 막기 위해 신속한 처리에 방점을 뒀다면 정당해산심판 사건은 오로지 법리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헌재가 다뤘던 어떤 사건보다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헌법재판관들은 말을 아꼈다. 김창종 재판관은 “이제 겨우 주심재판관이 정해졌을 뿐이다. 헌재가 사명감을 갖고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일원 재판관도 “참고할 선례가 거의 없어 시간을 갖고 연구해야 할 사건”이라고 말했다. 1956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독일 공산당의 해산결정을 내리기까지 4년 넘게 걸렸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심리도 ‘장기전’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헌재는 주심재판관의 결재를 받아 피청구인인 통합진보당에 청구접수통지를 한다. 피청구인은 통상 30일 이내에 청구서에 대한 답변서를 헌재에 제출한다. 이후 증거조사와 공개변론 등이 이어질 예정이다. 최종 결론은 9명의 헌법재판관이 난상토론을 벌이는 평의에서 내려진다.

 헌법학계에서는 정부가 정당해산심판청구와 함께 낸 통진당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선고청구가 적법한지를 판단하는 게 이번 심리의 첫 관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법상 헌재가 의원직 상실 여부를 판단할 권한이 있다는 명문규정은 없다. 하지만 위헌정당해산제도의 취지를 감안하면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1952년 독일 연방헌재가 근거규정 없이 사회주의국가당(SRP)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선고를 한 전례도 있다. 반면 헌재가 법적 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 의원직 상실 선고를 정부가 청구한 것은 절차적으로 부적당하다는 학계의 의견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정부가 낸 정당활동정지 가처분의 범위와 인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가처분이 받아들여지면 정당활동은 물론 소속 의원들의 의정활동도 대부분 정지돼 통진당은 사실상 ‘식물정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가처분이 본안 판단에 준하는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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