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 속 야당 압승-비 중간 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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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폭력과 여권이 난무하는 가운데 8일 실시된 「필리핀」 중간 선거의 개표 상황은 야당인 자유당의 우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번 선거는 「필리핀」정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정치「테러」·매수·관권 개입이 여전히 활개를 쳤다는 점에 있어서나, 73년 대통령 선거의 향방을 점칠 수 있는 전초전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버로미터」가 되는 것이다.
이번 중간 선거에서는 상원의원 24명 가운데 3분의1인 8명을 개선, 주지사 66명, 시장 1백26명, 지방의원 약 1만2천명을 뽑는다.
빈부 격차, 관리의 매직, 정당 정치의 부패, 토지 개혁의 부진이라는 심각한 사회적 모순을 안고 있는 「필리핀」정정은 보수 양당간의 소모적인 정쟁과 학생·노동자의 급진적인 집단 항의 소동에 신인민군이란 모택동 주의자들의 무공 「게릴라」까지 겹쳐 극도의 혼란 속에 휘말려왔다.
거센 반정부 물결에 직면한 「마르코스」 정권은 야당과 학생들의 운동을 신인민군과의 야합 인양 조작하려 한다는 일부의 비난을 무릅쓰고, 자기의 정적 「아키노」상원 의원이 야당 집회에 투탄한 반도에게 무기를 제공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 인신 보호령을 정지시켰다.
때문에 이 판국에 실시된 선거가 피살자 약 2백명을 기록한 유혈 선거로 빗나갈 소지는 애초부터 싹텄던 것이다.
8월21일 「마닐라」에서 열린 야당 집회에 폭탄이 터져 9명이 죽고 96명이 부상한 사건을 비롯해 정객들은 『군직제를 본뜬 대규모』의 사병 조직을 동원해 각종 폭력 사태를 빚어냈다.
1백34명의 의원 가운데 44명이 사병 조직을 가지고 있다는 설이며 일부 지역에서 저질러진 유권자의 이중 등록 사례 같은 것이 선거 기간 끊임없이 거론되었다.
선거 쟁점도 정책 대결 보다는 여의 『공산 위협』 경고와 야의 「정권 교체」 구호만이 맞부딪쳤다.
『야당이 공산당과 밀통하고 있다』고 한「마르코스」대통령이 영장 없는 체포와 인신 보호령의 정지로 야당과 신인민군을 일석이조로 몰아 때리려 하는데 반해, 야당은 「마르코스」의 『독재화·빈곤·부패 및 부정 선거』를 비난하며 맞섰다.
결국 상원의원 8명 가운데 이미 6명이나 자유당이 차지한 개표 상황을 볼 때 『총과 폭력단과 돈』으로 점철된 이번 선거는 「마르코스」의 73년 재선에의 길에 만만찮은 복병이 나타났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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