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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봉」정부선 폐쇄압력까지|후계자도 떠나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알버트·슈바이처」박사가 90년의 생애를 불살랐던「가봉」의 벽지「람바례네」의 병원에서 숨을거둔지 6년. 그동안 이「휴머니즘」의 성지는 망각속에 폐허화 하고 있다.
「슈바이처」박사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하나둘 떠나버려 모습을 찾을길 없다. 병동과 의료시설도 낡아 버리고 찾아오는 환자마저 줄어들어 황량한 느낌을 주고 있다. 박사가 유언에서 후계를 부탁했던「발터·문츠」박사와 「수바이처」박사의 비서겸 간호부였던 「앨리·질버」여사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현재「람바레네」병원에서 일하고 있는「스태프」는 독·불·영·화·「스위스」국적을 지닌 의사 5명과 간호원 8명등 30명.
박사의 딸「레나」부인은 병원유지를 위한 모금여행으로 반년만에 한번쯤 모습을 나타낼 정도이다.
「레나」부인은 그동안 생전의「슈바이처」박사가 끝까지 반대했던 병원의「근대화」에 손을 됐다. 전기와 상수도 시설을 끌어들인 것이다. 이러한 투자는 병원운영을 어렵게 한 것 같다.「슈바이처」박사 생존시 병원의 경비는 저서와 「오르간」연주·「레코드」의 인세 및 강연료, 각계로부터의 기부금으로 충당했으나 이제는 이러한 수입도 격감하고 있다.
각 병동은 지은지 이미 10년이 지나 노후했고 외과에서는「모나코」 왕비가 결혼기념으로 보내준「메스」를 아직도 쓰고 있다.「수바처」박사가 쓰던 방은 65년9월4일, 그가 숨을 거두던때의 상태로 보존되고 있으나 침상과 「테이블」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
근래에는 환자마저 격감하여 「비아프라」의 전쟁호아 재명을 수용하고 있는 소아과 병동과 외과병동도 한산하기 그지없다. 「수바이처」 생존시 매일 5백명을 넘는 환자로 붐비던 것을 생각하면 너무 쓸쓸한 느낌을 준다.
설상가상으로「가봉」공화국 정부는「람바레네」병원을『식민지시대의 상징』이라고 병원폐쇄의 압력을 넣고 있다.
정부에서는「미니스 트래·독트프」라는 이름으로 병원에 감독관을 보내 운영에 간섭하고 있다. 심지어「슈바이처」박사의 사진이 걸려있는 병실에는 박사의 사진옆에「카봉」대통령의 사진을 걸어 놓독촌까지 하고있다.
「가봉」정부는「슈바이처」박사의 영향이「가봉」의「아프리카」화에 장애가 된다고 섕각하고 있는듯하다.
이에 대한 반발로「람바레니」병원의 맞은편에 현대시설을 갖춘 국립병원을 세워「말라리아」·나환자들을 수용하고 있다.
「가봉」정부의 어느 고위관리는 「람바레니」의 할일은 끝났다』 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어 병원의 페쇄공책이 실시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뜻을 비치고 있다.
지금도 병원의 하루는 아침7시30분 식사를 알리는 공소리로 시작되고 있다. 낮12시30분 점심시간과 저녁7시 저녁식사 시간 사이에 여섯번씩 종이 울려 시간을 알리고 있다.
저녁식사가 끝난후 아래서 성경을 읽던 일과도 흐지부지 돼버렸다.
기도와 성서낭독이 시작되기도 전에 방안에 남는 사람은 5∼6명에 지나지않는 실정이다.
「슈바이처」박사가「바흐」의 곡을 연주하던「오르간」도이미「유럽」으로 옮겨지고 식당 한 모퉁이에 낡은「피아노」한대가 덩그너리 놓여있다. <김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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