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결 뭘까, 33년간 600회 '인문학 콘서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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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대구 계명대 국제세미나실에서 열린 제600회 목요철학인문포럼에 강연자로 나선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식민주의 사관과 그 극복의 문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목요철학인문포럼은 1980년 10월 8일 첫 강좌(아가페와 에로스)가 열린 이후 33년간 계속 이어졌다. [사진 계명대]

‘1980년 10월 시작해 만 33년. 지난달 31일로 600회 강연. 그간 청중 연인원 10만 명’.

 대구 계명대 ‘목요철학원’이 여는 ‘목요철학인문포럼’의 기록이다. 여름·겨울 방학을 제외하고 33년간 매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열렸다. 1시간 강연과 1시간 토론으로 구성된 강좌에서는 매번 250~300명이 좌석을 꽉 채우고, 일부는 서서 강연을 들었다. 국내 학술 행사로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장수하는 프로그램이다. 딱딱하고 어렵다는 철학·역사 등을 주제로 삼는 데도 인기를 이어 가고 있다. 요즘 대학과 기업은 물론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도 인기인 ‘인문학 강좌’의 원조인 셈이다.

 목요철학인문포럼은 80년 당시 계명대 철학과 교수였던 백승균(77) 목요철학원장이 동료 교수 2명과 함께 만들었다. ‘철학의 대중화, 대중의 철학화’를 기치로 내걸고서다. 백 원장은 “학생·시민들과 어울려 인간의 가치와 자유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포럼을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처음엔 학점과 무관한 대학 내 강좌로 시작했다. “아무나 와서 들으라”는 거였다. 기치로 내건 ‘철학의 대중화’를 위해 쉽고 재미있는 주제를 택했다. 예컨대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철학적 의미’처럼 일반인이 제목만 듣고도 호기심을 느낄 만한 것이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처음엔 경북대·영남대 같은 다른 대학 학생들이 들어오더니 이내 시민들까지로 청중 저변이 넓어졌다. 시민 속으로 파고들면서 눈높이 맞추기에 더 힘썼다. ‘주역과 점, 그리고 우환’ ‘성씨와 본관:언제부터 무슨 기능을 했나’ 같은 강연이 이어졌다. 일반 시민의 관심이 갈수록 커져 2011년 들어서는 아예 대구 도심의 중앙도서관으로 강연 장소를 옮겼다.

 때론 해외 석학을 초청해 지식에 대한 갈증을 풀어줬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 미국의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등이 목요철학인문포럼 강단에 섰다.

 파급 효과도 컸다. 국내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등이 선보인 인문학 강좌는 대부분 목요철학인문포럼을 벤치마킹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 포럼이 시민들 관심까지 끈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수강생들의 삶과 철학에도 영향을 줬다. 단골 청중 70여 명이 최근 ‘목요철학인문포럼자치회’라는 자원봉사단체를 만든 것. 정청일(68) 자치회장은 “회원들이 퇴계·율곡 등 강좌에서 배운 선현의 뜻에 따라 ‘나누는 삶, 실천하는 삶’을 살자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회원 안봉태(66·여)씨는 “4년 넘게 강좌를 들으면서 강좌 ‘오빠부대’ 중 하나가 됐다”며 “마음이 넓어지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목요철학원은 내년 포럼의 큰 주제를 문학으로 정했다. 문학·사학·철학으로 대별되는 인문학 중 문학 부문을 많이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포스텍 이진우(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는 “인문학의 대중화와 소통이란 점에 관심이 없던 시절에 아이디어를 내 ‘열린 강좌를 시작한 것만 해도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며 “이런 아이디어에 포럼 운영진의 헌신이 더해진 것이 오늘날 목요철학인문포럼을 국내 대표 강좌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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