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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교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오늘도 이슬이 듬뿍 맺힌 풀숲을 헤치며 반짝이는 눈빛과 씨름하러 긴장감 속에 한발한발 내딛는다. 금일은 성내지 말고 더 열심히 분필을 굴리자고….
지난 3월 졸업 후 처음 연천군에 갔을 때는 동심이 되어 웃고 울고 했지만 국군의 연습 포 사격(첫날은 환영 포 사격이라 하시던 교장선생님의 말씀) 과 울타리 밖을 뛰쳐나간 양이 어미를 그리워하는 망향 병 때문에 흐느껴 우는 소년소녀를 두고 임진강을 건너와 버렸다.
그러나 방학을 마치고 개학이 되니 울음으로 얼룩진 얼굴들이 꿈속에서도 애타게 손짓하며 부른다. 망향 병이나 부모를 그리던 정보다도 더 진하게….『윤 아도 이젠 시집가야지?』하는 어머니의 말씀보다도 더욱 티없이 맑게 뛰어 노는 시골의 소녀와 운동장의 벌판이 더 나를 유혹한다.
이곳으로 개나리 봇짐을 싸 가지고 온 지도 벌써 1개월이 넘는다. 왜 교사 직을 선택하기를 꺼려하고 더욱 더 시골 발령에는 혀를 차며 눈물을 흘리는지?
나는 매일매일 벌판에 고개 숙인 벼이삭과 푸른 대지 위의 잡곡과 채소 류를 보며 이것이 한국사람 전부를 먹일 것이며 정신과 육체를 기름지게 할 것이라고 흐뭇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수줍음에 못 이겨 소 창 보자기에 잘된 다섯 개의 가지와 탐스런 몇 개의 빨간 고구마를 놓고 줄달음을 치며 뛰어 눈앞에서 사라지는 가물가물 거리는 뒷모습을 쳐다본다.
그리고 손으로 풍성하게 잘된 그 자리에 놓여진 가지와 고구마를 만지는데 고사리 같은 손가락의 감촉을 느끼며 얼굴이 화끈 달아오름과 내 가슴 형용할 수 없는 선율의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입술을 다시금 살며시 물며 『우물은 한 우물을 파야지』이런 단어의 나열의 뇌리를 스치며 보다 밝은 내일을 다짐하고 일어선다.
조윤옥<경기도 광주군 실촌면 만선리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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