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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경제 브레인 … ‘정층설계’ 전략에 방점

중앙일보

입력

“이 사람이 류허(劉鶴·61)입니다. 나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월 베이징을 방문한 톰 도닐런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만난 자리에서 류허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 겸임)을 설명한 말이다. 도닐런 안보보좌관은 당시 미·중 정상회담을 조율하기 위해 방중했다.

류허 부주임은 9일부터 열릴 당 제18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통과될 개혁 방안을 막후에서 총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지금까지 당 총서기의 중앙경제공작회의 연설문 작성에 아홉 차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에 다섯 차례나 참여한 경제 전문가다. 시진핑 시대의 ‘경제 책사’로 평가된다. 류허란 인물을 통해 3중전회의 핵심 개혁 방안을 살펴봤다.

“정권은 총구에서 나오고 정책은 붓대에서 나온다.”

베이징 정가의 금언이다. 중국공산당은 혁명당에서 집정당(執政黨)으로 진화해 왔다. 집정의 핵심은 정책이다. 정책을 만드는 브레인은 그래서 중요하다. 류허는 리수레이(李書磊·49) 중앙당교 부교장과 함께 시 주석의 양대 문담(文膽·연설문 담당 비서)이다. 베이징대 ‘신동’이던 리수레이가 시진핑의 정치비서라면 ‘노병(老兵)’ 류허는 경제비서다.

3중전회를 앞두고 얼마 전 ‘383개혁 방안’이 공개됐다. 류허가 리웨이(李偉·국무원발전연구중심 주임)와 함께 만든 ‘개혁 노선도’다. ‘383방안’의 핵심은 ‘시장과 정부의 올바른 관계 정립’이다. 시장의 힘으로 정부의 힘을 빼겠다는 의도와 아울러 국퇴민진(國退民進:국가의 후퇴와 민간의 약진) 전략이다. ‘383방안’은 시장·정부·기업을 삼위일체로 개혁하기 위해 행정, 기초산업, 토지, 금융, 재정·조세, 국유자산, 창조·녹색경제, 대외경제 등 8대 개혁 영역에서 3대 개혁 돌파구를 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3대 개혁 돌파구는 다시 ▶시장 진입 문턱을 낮춰 경쟁을 촉진하고 ▶기초사회보장시스템을 구축하며 ▶공유토지 거래를 허용하는 토지개혁의 시행이다. ‘383방안’은 신좌파의 거센 반발을 초래했다. 예컨대 중앙민족대학 장훙량(張宏良) 교수는 “383방안은 미국이 중국을 도살하려는 방안”이라고 극언을 퍼부었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학원 출신인 류허를 ‘미국 이익의 대변인’으로 비난하는 글도 잇따른다.

시장경제 신봉자 … 미국과 소통 능해
류허는 미국과의 소통에 능하다. 2008년 9월 24일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이틀 뒤 류허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특명을 받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하버드대의 경제 전문가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중국 쪽의 대응방안이 논의됐다. 금융위기 현장을 살펴본 류허는 베이징으로 돌아와 비밀 보고서를 작성했다. 11월 9일 중국은 4조 위안(약 700조원) 규모의 강력한 부양책을 내놨다. 류허의 보고서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류허는 당시 금융위기를 연구한 끝에 1930년대의 대공황과 공통점을 찾았다. 그러곤 ‘일생에 한 번 맞이할 위기 국면이 닥치면 정책 결정자들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단견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하며 과감한 부양책을 주문했다.

류허는 신좌파의 과녁이 될 만큼 시장경제의 신봉자다. 그는 정치와 기업, 정치와 자본, 정치와 사회를 철저히 분리시켜 자원 배분 과정에서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기본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그는 평소 “국수주의, 협의의 민족주의, 경제문제의 정치화 세 가지가 경제 분야의 가장 큰 적들”이라고 말해 왔다.

지난 3년간 중국 경제의 키워드는 ‘정층설계(頂層設計:Top-level design)’였다. 류허가 채택한 개념인데 일종의 ‘그랜드 전략’을 뜻한다. 정층설계는 시스템공학 가운데 회로 설계와 네트워크 구축 이론에서 나온 말이다. 미세한 서브디자인을 통합하는 톱 레벨의 마스터 디자인을 의미한다. 인민대학에서 공업경제학을 전공하고 정보기술(IT) 분야에 조예가 깊은 류허만이 찾을 수 있는 용어다. 정층설계는 중국에서 시진핑의 입을 통해 첫 선을 보였다. 2010년 제17기 5중전회의 ‘12차 5개년 계획에 대한 당의 건의’라는 문건에서다. 당시 문건 작성에는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이 깊숙이 관여했다. 지난해 12월 시진핑 총서기는 “체제개혁의 정층설계와 총체적인 계획을 깊이 연구하고 전면적으로 심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개혁의 총체적인 방안·노선도·시간표를 명확하게 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3년 경제 운용 지침을 제시한 당시 회의의 키워드는 ‘체제개혁의 정층설계’였다. 그러면서 시진핑 개혁의 상징어가 됐다.

중국 경제의 정층설계는 현재 3개 그룹이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이나 2030’ 보고서를 월드뱅크와 함께 만든 국무원발전연구중심 ▶베이징 케언크로스(Cairncross) 재단 ▶류허가 98년 발기한 ‘중국경제 50인 포럼’이다. 미·중 전문가 그룹의 긴밀한 협조 아래 중국 경제의 청사진이 그려지고 있다는 의미다. 케언크로스 재단 그룹에는 에드윈 림(Edwin Lim) 세계은행 중국지사 대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스펜스 교수, 신성장 이론의 창시자 폴 로머(Paul Romer) 등이 속해 있다. 이들은 중요한 경제계획을 수립할 때 정책의견서를 냈다고 한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이번 3중전회를 앞두고 신좌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개혁파 시장주의자인 류허의 손을 들어줬다. 중국은 3중전회 뒤 위안화 국제화를 본격 추진할 예정이다. 그동안 중국인민은행(중앙은행)이 결정해 온 이자율을 시장화한다는 구상이다.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에서 위안화 환율을 시장에 맡기는 조치는 그런 구상의 첫 단추다. 이럴 경우 달러화와 위안화의 한판 승부가 벌어질 전망이다.

60년대 중학 시절 시진핑과 인연
류허의 부상에는 시진핑의 신뢰가 깔려 있다. 두 사람은 60년대 베이징 101중학에 다니면서 서로 알게 됐다. 류허가 ‘시진핑의 그림자’라고 불리는 이유다. 2007년 제17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정치국 상무위원에 처음 당선된 이래 류허는 현지시찰을 수행했다. 특히 지난해 9월 류허가 광둥 지역을 찾았을 땐 왕양 광둥성 서기가 그를 만나 경제개혁을 논의했다. 석 달 뒤인 12월 당 총서기에 취임한 시진핑이 첫 지방 시찰지로 광둥성을 찾은 배경이다. 92년 덩샤오핑(鄧小平)이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할 때와 비슷한 행보였다. 12월 11일 시진핑은 ‘신(新)남순강화’로 이름 붙여진 연설을 했다. 요지는 “중국의 개혁은 이미 견고한 적을 공격해야 하는 시점(공견기·攻堅期)이자 (발로 더듬으며 건널 수 없는) 심수구(深水區)에 접어들었다. 정치적 용기와 지혜를 가지고 실기(失機)하지 말고 중요 영역에서의 개혁을 심화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시진핑의 연설은 류허의 지론과 같았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청 박사(시니어펠로)는 “류허는 중국의 래리 서머스”라고 평가한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그동안 미국 경제를 물밑에서 움직여 온 책사다. 하지만 TV 대담프로에 단골로 출연하는 서머스와 달리 류허는 대중을 피한다. 중난하이에서 소수의 지도자만을 위해 일한다. 언론 인터뷰는 일절 사양한다.

미국은 류허를 이미 오래 전부터 주목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2009년 11월 9일자 주중 미국대사관 비밀 전문에는 류허가 로버트 호매츠(Robert Hormats) 국무차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 발언이 묘사돼 있다. “류허 중앙재경영도소조 부주임은 미·중 양국 간 무역 충돌은 ‘끔찍하다’고 말했다. 작은 분쟁이 두 나라에 정치·사회적으로 중대한 충격을 야기할 수 있다. 미국의 노조와 2010년 중간선거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시킬 수 있다. 미국 지방정부들은 세금 징수 기반과 산업 보호를 원한다. 양국은 함께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이는 양국뿐 아니라 모든 세계를 위한 것이다.”

류허는 당시 미국이 금융위기를 극복하려면 2~3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그럴 경우 중국의 해외 시장이 축소될 것이며, 중국 지도자들은 내수 확대로 재균형을 촉진하는 새로운 발전전략을 세울 것’이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당시 전문에는 흥미로운 주석이 달려 있다. “류허는 도시화 주제로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차기 5개년 계획에서 도시화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도시화에 대해 류허와 리커창 총리 사이의 미묘한 시각차가 확인되는 대목이다.



류허(劉鶴) ‘공·농·병·해귀(工農兵海歸)’로 불린다. 문화혁명 기간에 노동자·농부·군인 생활을 모두 경험했다. 또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학원에서 공공관리석사(MPA) 학위를 딴 뒤 중국으로 돌아왔다(海歸). 2003년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부주임을 맡아 제16기 3중전회 이래 주요 문건의 기초작업에 참여했다. 지난 3월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으로 승진해 조장인 리커창 총리를 보좌하면서 중국 경제의 총설계사란 평가를 받고 있다.

신경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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