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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관의 강제집행 방해행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이나 징발보상소송에서 승소가 확정되더라도 강제집행을 할 길이 없어 채권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서울·서울제일·수도 등 재경 3개 변호사회는 지난달 20일부터 국가를 피고로 한 배상사건강제집행방해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한 결과 정부기관이 강제집행을 면탈하기 위하여 집달이의 출입을 막고 폭행을 하는 사태가 자주 일어나고 있어 승소해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다.
올 들어 서울시내의 국가배상사건강제집행은 모두 4백82건으로 이 가운데서 1백80건이 아직까지 처리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국가가 패소한 경우에는 집달이들이 현금취급기관인 전화국·우체국·철도역·전매청 등을 상대로 강제집행을 하는 것이 상례였던 것인데 이들 기관이 현금을 뺏기고 나면 예산집행에 큰 차질이 있어 강제 집행 당한 공무원에게 책임을 지우고 있기 때문에, 현금수납장소 주변에 철조망을 치는 등의 방법으로 집달이의 접근을 막고 있으며, 또 국방부의 경우는 아예 위병소에서 집달이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형편이요, 그래도 강제로 집행하려고 하면 폭행과 협박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관공서에서 현금을 강제 집행하는 이유는 법무부의 보상금 지불예산이 너무나 적어 법무부에 보상요청을 하더라도 돈을 내 주지 않아 부득이 강제집행에 호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의 정부 패소액만 하더라도 16억원인데 법무부의 보상액 예산은 겨우 3억7천만원 밖에 계상돼 있지 않은 것이다.
국가는 국민들의 기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해 주어야할 의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패소에 의한 손해배상금이나 손실보상금을 적시에 지급하지 않아 강제집행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바 그러한 법적 구제 수단으로서의 강제집행까지도 방해하거나 기피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기관이 스스로 국헌을 문란케 하는 소이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과 「민사소송에 관한 임시 조치법」등을 제정하여 국가의 소송법상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어 이러한 사실자체가 당사자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난이 높은 것이다. 민형 소송에 관한 임시 조치 법은 제3조에서『재산권상의 청구에 관한 각 심의 판결에는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당사자의 신청의 유무를 불문하고 가 집행의 선고를 부하여야한다』고 규정하면서도『다만 국가를 상대로 하는 재산권의 청구에 관하여는 제2심 판결에 한하여 가 집행의 선고를 부할 수 있다』고 하여 위헌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 할 것이다.
이 규정에 따라 법원은 국가상대소송에서는 2심에만 가 집행 선고를 하고 3심이나 확정판결에 따라 본 집행을 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까다로운 조건을 무릅쓰고 승소한 자도 끝내 집행을 할 수 없다고 하면 이는 민사소송법상의 당사자평등의 원칙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요, 정부가 채무를 갚지 않겠다고 채무이행을 면탈하려고 하고 있으니 이는 언어도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그 동안 개발행정의 미명아래 지나친 팽창정책만을 추구해 왔고, 과잉의욕에 따른 부산물로서 법질서를 파괴하는 일이 허다했었다. 그러나 5.16후 10년의 세월이 흐른 현시점에서는 이러한 법질서를 문란케하는 위법행위는 솔선해서 그 시정에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요, 그로써 법치주의를 회복해야만 할 것이다.
법무부가 보상예산을 지나치게 과소 책정한 이유를 이해치 못할 바는 아니로되 만일 법무부에 충분한 예산이 있다고 한다면 현금 취급 기관에 대한 강제집행의 폐단은 덜 수 있을 것이요, 국민도 신속한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을 것이기에 법무부는 이 부족 분을 추경예산에 반영해 주어야할 것이다. 국민이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면서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걸고 여기서 승소해도 실효가 없는 억울한 일이 다시는 없도록 정부는 내년도 예산부터는 충분한 보상비를 계정 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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