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공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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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금년 교육주간의「캠페인」은 『교육공해추방』이다. 「교육공해」라면 학교 교실에 스며드는 배기「개스」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것을 뜻하지는 않는가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정신공해의 추방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 교육공해는 내적 공해와 외적공해로 지적되고 있다. 「내적」이란 시설·교사자질 등을 포함한다. 유해출판물·저질의 「저널리즘」·학부형의 일류병 등은 외적공해로 지적되었다. 학교운동장의 울타리를 경계로, 그 안을 학교, 그 밖을 학교 아닌 외적세계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엔 더러 의문이 없지 않다. 적어도 교육의 이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입장이라면 세계가 학교라는 거시적 안목이 필요할 것 같다. 최근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던「P·F·드러커」저『단기의 시대』에서도 바로 그 교육의 환경과 분위기를 중요시하고 있다.『학생들에게 학습이 가능한 환경과 분위기를 마련해 주기만 한다면…』현대의 학교교육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풀리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드러커」는 교육이『모든 이에게 유쾌한 체험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드러커」는『머리가 나쁜 아이』라는 통념엔 깊이 동의한다. 본질적으로 두뇌의 불구가 아닌 『머리가 나쁜 아이는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머리가 나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오로지 그 아이의 바깥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가령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교육을 받는 아이와 학교에서는 물론, 그 사회와 가정에서도 교육을 받는 아이와는 우선 교육시간에서 차이가 생긴다. 또한 학교 바깥에서 교육이 이루어질 때 그 환경과 분위기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이때에 누구의 머리가 좋은 것처럼 보이며, 또 누구의 머리가 나쁜 것처럼 보일지는 그리 어려운 판단이 필요치 않다.
이것은 교사의 자질과도 관계가 있다. 아이들의 개성과 적성에 따라서 교육의 방법을 평균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다. 그렇지 못할 때, 머리가 나쁜 아이가 생긴다고 「드러커」는 말한다.
학교 밖의 사회도 그렇다. 「드러커」는 중국의 역사를 회상한다. 13세기의 중국은 세계문화의 첨단에 있었다. 그러나 그후 중국은 자유사상과 예술에의 창조력에 대한 하나의 반발로서 배타적인 고등보통교육을 실시했다. 1세기도 못 가 중국의 문화는 「부모의 땅」이 되었다.
결국 교육은 국민적인 각성과 그 발랄한 분위기 속에서만 비로소 빛을 보게 된다는 발상이다.
때마침 교육공해추방 「캠페인」이 벌어진 것은 이 주간에만 그칠 일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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