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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트러진「일사 불란」「10·2항명」그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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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치성 내무부장관의 해임건의안 가결로 집권당은 심각한 충격파가 일고 있다. 3부 장관 해임안 표결직후 공화당소속의원들은 침통한 얼굴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전용태 의원은『국내외 정세가 착잡할 때 이변이 생겼다』면서 금년 추석은 잡쳤다고 했고, 장덕진 의원 (서울)은『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 항명은 순간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오 내무에 의해 군수와 서장 등 내무부에 대규모 인사바람이 일었을 때 이른바 4인 체제를 비롯한 상당수 의원들은 직접 간접으로 불평도 했고 항의도 했다.
공화당 총무 단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표결 하루전인 1일C「호텔」에 본부를 설치하고 의원들의 설득에 밤을 새웠다.
총무 단의 한사람 말로는 공화당 내 10명 안팎의 이탈이 있다고 보고 이를 야당에서 메우려 했다는 것. 당 일부의 분석은 총무 단의 대야공작에 따라 9명의 야당의원이 부표를 던졌고 따라서 공화당에서 32명이 이탈, 가표 내지는 무효 표를 던졌다는 것.
백남억 당의장은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이 표결된 2일 아침 일찍 청와대로 박정희 당총재를 찾아갔다. 백 의장은 이 자리에서 공화당의원중 상당수가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 안에 동조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박 총재로부터 거듭 일사불란한 단합을 당부 받은 백 의장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모습으로 국회 안의 공화당의장 실로 돌아왔다.
백 당의장은 그때 상항으로는 오 내무의 해임 안이 가결될 것이란 판단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당 간부들을 불러들였다. 길재호 정책위의장이 맨 먼저 도착해서 한동안 이마를 맞대고 얘기했으며 뒤이어 길전식 사무총장, 장경순 국회부의장, 김재순 원내총무, 김성곤 중앙위의장, 신형식 대변인 등이 들어왔다.
백 의장은 당 간부들에게 심장치 않은 기상으로 보아 60명 가량의 상속의원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이 상황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상의했다.
길 사무총장은 백지투표를 해서 인위적으로 이탈을 방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신 대변인은 이 상황에서는 표결을 늦출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 백 당의장에게 건의했다.
신 대변인은 법정표결시한인 3일 상오10시까지 표결을 안 하는 경우에 생기는 법적 문제를 미리 검토했었다. 이 문제에 대한 권효섭 의사국장의 해석은 『법정 기한 안에 표결을 안 할 때에는 해임건의안을 다시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가장 당황한 것은 김재순 원내충무와 장경순 부의장이었던 것 갈다. 이들은 『60명이나 박대통령의 지시에 항명한다면 집권당이 설 땅은 어디냐』고 흥분했다.
그러나 원내 총무 단은 반란표가 다소 있더라도 야당의 동조 표로 상쇄되어 해임 안이 가결되는 사태까지 생길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그래서 김 총무는『사태가 악화되었다고 해서 인사문제를 비굴하게 처리할 수는 없다』면서 백 당의장이 의원총회에서 소속의원들의 단결을 다시 한번 설득시킬 것을 요청했다.
여러 갈래의 의견으로 갈피를 잡기 어렵게 되자 길 총장은『백 당의장이 사태를 잘 판단해서 결론을 내려달라』고 했다.
백 당의장은 한동안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의원 총 회장으로 향했고 당 간부들이 뒤를 따랐다.
이러는 동안 국회 안의 휴게실에 소집했던 의원총회는 9시에서 11시로 무려 2시간이나 늦추어졌다.
『여러 의원들은 평소에 특정인과 사이가 나쁘거나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정당운영에 불평불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당인의 차원에서 볼 때 개인감정을 승화시켜야 할 때가 눈앞에 당도했다. 오늘아침 박 총재로부터 다시 한번 단결을 과시하도록 단단히 지시를 받았다. 여러분은 조직체의 일원으로 평소의 불만을 해소하고 흔쾌한 단결력을 정말 과시해 주길 바란다.』
백 의장은 의원총회에서 다시 한번 간곡한 부탁을 했다.
이어 김재순 총무는『당 간부 중에는 백지투표를 하자는 견해도 있었으나 당초 방침대로 정정당당하게 부표를 던져 3부 장관 모두를 부결시키자』고 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국무총리 김종필 의원은 수심에 찬 표정으로 말없이 상황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백두진 국회의장으로부터 오 내무 해임안 가결이 선포되었다.
이 순간 김 총리는 아무 말 없이 퇴장했다.
백남억 당의장과 길전식 사무총장은 자리에 앉은 채 착잡한 표정을 한 손으로 가렸고, 길재호 정책위의장도 침울한 얼굴이었고 김진만 재경위원장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김재순 총무와 장형순·문태준·윤재명·박태원 부 총무는 총무실 문을 잠그고 사표를 썼으며 당의장 실에는 백 당의장과 길 사무총장·구태희·현오봉 당무위원·이병희 무임소장관·신 대변인 등이 역시 문을 잠그고 사후대책을 협의했다.
이때 신 대변인은 백 의장에게 새 표를 냈다가『성명이나 발표하는 대변인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라는 만류로 되돌려 받았고 백 의장은 자신과 길 사무총장의 사표를 거머쥐고 청와대에 올라갔다.
백 당의장과 김원내 총무는 각각 사표를 가지고 청와대에 갔으나 박 총재가 교외에 나가고 없어 김정렴 비서실장에게 백 당의장은 자신의 사표만, 김 총무는 총무단 전원의 사표를 맡기고 나왔다.
백 당의장은 이날 항명사태에 대해『내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기자질문을 회피했고 길 총장은 뒤늦게 중앙당에 들렀다가 어디론가 나갔으며 이른바 4인 체제의 김성곤·길재호·김진만 의원 등은 뿔뿔이 헤어졌다.
오 내무에 대한 표결이 끝난 직후 퇴장한 김 총리는 청와대로 직행해서 약30분간 박대통령과 요담 한 후 중앙청에 돌아가 오 내무·윤주영 문공·서일교 총무처장관·정성관 내무차관과 점심을 같이하고 KBS-TV「프로」를 녹화하기 위해 박명근 의원과 같이 파주를 다녀왔다.
국회에 늦게까지 남아있던 장경순 부의장은 백 당의장에게 전화로 즉각 당무회의를 소집하도록 요구했으나 백 당의장은『냉각기를 갖는 것이 좋겠다』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부의장은 다시 김 총장에게 전화로 당무회의가 아니면 중앙당기 위를 소집해서 이탈자에 대한 조사를 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추석전야는 조용히 지나가고 말았다.
해임안 가결이 어떤 파동을 몰고 올지는 예측할 수 없다. 추석날 이어서인지 3일 하루는 눈에 띄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박대통령은 해임안 가결직후 김 총리로부터 약30분간 보고를 들은 뒤 하오엔 교외로 나갔다.
김종필 총리는 3일 개천절 기념식애 참석했다가 공관으로 돌아가 민관식 문교·서일교 총무처장관과 점심을 함께 한 뒤 1시쯤 청와대로 올라갔다.
총리는 청와대에서 3시간 가까이 머물렀는데 이중 1시간동안 대통령과 요담 했다는 얘기.
4일 아침에는 정부·여당간부들의 총리공관 조찬회가 있게 되어 있으나 취소됐다.
백남억 당의장은 3일 「뉴서울」에 나가 「골프」를 쳤다. 좀 늦게 청와대에서 백 의장을 부른다는 전갈이 있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아 청와대엔 아직 들르지 않았다는 애기.
오 내무는 장관실에서 해임안가결의 소식을 들은 뒤 곧 중앙청으로 가 김 총리에게 사표를 냈다. 추석인 3일 오 내무는 예년처럼 의정부교외로 나가 성묘한 뒤 하오에는 장관실에 나와 근무했다. 오 장관은 하오6시 이후 집에 돌아와 찾아오는 손님들을 만났는데『무거운 짐을 벗어놓은 듯 홀가분한 기분』이라면서『사표가 수리될 때까지는 행정의 공백을 가져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상근무를 하겠다』고 했다.
길재호 정책위의장·김성곤 중앙위의장·김진만 재정위원장은 모두 따로 교외로 나간 것으로 돼 있지만 서로 만나지는 않았다. 이들 4인 체제 간부들을 비롯한 몇 의원들은 하오의 행방에 대해선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4일 아직 백 당의장을 비롯해서 당무위원들이 중앙당에 나왔으나 길재호 정책위원장·김성곤 중앙위의장 김진만 재정위원장은 늦게까지도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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