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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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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향수는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것을 잊고 사는 사람과 못 잊어 하는 사람이 다를 뿐이다.
지명에 대한 애착만은 아닐 것이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결, 낯익은 오솔길, 지평선, 맑은 물, 새소리, 먼 산의 빛깔과 선, 하찮은 건물들, 그리고 독특한 그 고장의 흙 냄새, 인정 등이 모두 향수의 화음을 이루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난세를 겪으며, 그 어줍지 않은 도시공화국의 풍속에 휩쓸려 모두들 고향을 잃고 산다.
해마다 느는 이농민들, 도회지에 대한 터무니없는 환상 등은「향수」라는 인간본연의 그리움 마저 앗아가 버렸다. 가히『향수부재의 시대』를 맞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불현듯 고향이 그리워지는 때가 있다. 그 어두운 망각 속에서 적막과 회유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중추가절, 푸르른 하늘하며, 씻은 듯이 맑은 달빛은 세진 속에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 준다. 이런 순간이면 고향의 그 섬세한 기억들이 하나 둘 향수로 일깨워 진다. 당의 시성 두보는 이렇게 읊조린다. 『이웃은 모두 흩어지고 산사람의 소식조차 끊겼구나.』안녹산의 난을 겪으며, 그도 고향이 그리웠다. 『무가별』의 이 장시는 탄식처럼 이렇게 이어진다.
숙조련본지(새들도 잠자리는 옛 가지에 찾아들거늘….)
두보의 「비가」는 구구 절절에 한결 더 향수가 어려있다.
『호진은 하늘을 가리고 길은 멀기도 먼데/들 거위 날고 두루미도 가건만/어찌 나를 그대 곁에 데려다 줄 수 있으랴.』올 가을은 북에 고향을 가진 실향민의 향수까지도 더욱 애절하게 해준다. 향수의 감정은 동과 서의 차이가 없나보다.
제2차대전이 끝날 무렵, 북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실화. 미군병사가 중상을 입고 「이탈리아」의 한 농가에서 간호를 받고 있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무엇으로 이 고마움을 갚을지….나는, 나는…가장 소중히 아끼던 것이 하나있는데…그것을, 그것을 당신에게…』「이탈리아」 농부는 그 병사의 입에 귀를 가까이 가져갔다. 그의 눈동자는 별안간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나의 고향 「텍사스」에 있는 햇빛과 물과 녹색을….』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귀향이란 근원에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하이데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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