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 아랑곳없는 향학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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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이공=신상갑특파원】『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베트남 여자가 되겠어요.』 응·엔·콰이 국민학교 2년생 티쿡양(7)은 또렷또렷한 월남말로 월남문교장관 노·칵·통 할아버지에게 대답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이 나라 고유의 아오자이를 입은 22세쯤 돼 보이는 여선생은 티쿡양의 대답에 만족한 듯 예쁘장한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사이공 시내에 자리잡은 응·엔·콰이 국민학교는 24일 새로 깨끗한 교실 6개를 더 얻게 됐다.
주월 한국군 비둘기부대는 지난 3월16일에 착공, 6개월만에 6개 교실을 신축, 학교당국에 새 교실을 이양한 것이다.
고사리 같은 손을 한 어린이의 교실에는 큼직한 태극기 두개가 월남 국기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나무로 만든 책상은 값진 것이 아닌 소박한 것이었으나 이 나라가 전쟁 중임을 생각할 때 이해가 갔다. 책상머리에 걸려있는 책가방도 허름했다.
월남측에서 문교장관·사이공 시장이, 한국측에서 김세원 공사·비둘기 부대장 등이 교실에 들어서자 티없이 맑은 어린이들은 월남 애국가를 합창했다. 월남 말이라 잘 알아듣지는 못했으나 학과를 복습하는 폼이 일품이었다.
기자는 어린이들의 노트를 살펴보았다. 대부분 깨알같은 글씨를 깨끗이 쓰고 있는데 감명을 받았다. 개중에는 개구쟁이의 장난기가 없지도 않았지만, 어느 나라든지 국민교육은 그 나라 발전의 백년대계라 했다.
비록 의복은 초라하고 얼굴은 기름지지 않았으나 이들 어린이의 배움에의 열성은 어느 나라 학생보다 뒤지는 것이 아닌 듯 보였다.
여학생들의 옷차림은 우리 나라 어린이의 잠옷과 같은 엷은 천으로 수수했다. 이 나라 어린이들의 대답하는 태도는 자못 당당했다. 오랜 프랑스 지배들 받은 부모의 생활태도를 그대로 물려받은 탓인지 문교장관이나 사이공 시장의 물음에 대답하는 몸가짐이 어색하지 않고 퍽 서양 어린이처럼 세련돼 있었다.
동양과 서양이 묘하게 혼합돼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마 이 점은 다른 동양의 어린이와는 대조적이 아닌가 생각됐다. 부끄럼 같은 것은 조금도 없었다.
처녀여선생의 태도 역시 서양식 자세가 몸에 배어 있는 듯 했다.
이날 수업을 참관한 한국측 관계자들은 『사랑이란 주는 것이다』라는 경구의 진리는 다시금 깨달았다.
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 활약하는 날 배움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따이한의 고마움』은 결코 그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그들의 눈에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마음과 마음을 잇는 우정의 실은 쉽게 끊어질 리가 없을 것 같다.
비둘기 부대는 이날 팜·티·히엔 국민학교를 위해서도 3개 교실을 지어주었다. 두 학교 준공식장 부근은 사람의 물결을 이뤘다. 특히 검은 옷차림에 총을 멘 여자 자치대는 전쟁국가에 와 있음을 새삼 실감케 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이공 시내가 시끄럽고 툭하면 미국 차량이 데모대의 불에 타도 한국군이나 한국민간인의 차가 피해를 보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이와 같은 건설에 대해 월남인들이 마음속으로 다소간 감사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였다.
월남 사람들은 베트콩 1백명을 죽이는 것보다 교실 한 개를 지어주는 것을 더 고마워하고 있다. 벽에 붙은 어린이들의 그림은 솜씨가 괜찮아 보였다.
귀빈들이 교실을 나올 때 『캄온(감은), 안녕히 가세요』라고 일제히 인사하는 어린이의 눈총은 샛별처럼 빛나 있었다.
교실에 앉아 있는 이들의 열의 앞에는 전쟁도 무기력해 보였다. 『아는 것이 힘』이 된다는 말은 세계의 공통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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