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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민족의 「모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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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백의민족의 풍속도도 이제는 올데까지 다 왔다는 느낌을 주는 때가 많다. 초「미니」, 「핫·팬츠」, 잡스런 쌍말을 부러 프린트해서 만든 「옷감」, 장발「히피」족, 사이키델릭의 심야「파티」, 외설 출판물…그리고, 남녀노소, 도시·농촌을 가릴 것 없이 하나의 풍조화하고 있는 도박의 성행 등등, 참으로 엄청난 변신이다.
백색은 흔히 고래로 내려온 우리 민족의 색깔이었다. 이는 백색이 신성·청정·선을, 흑색이 사악을 상징한다고 본 고대 부여족들의 원시신앙에서 나온 것이었다.
지금 「백의민족」이란 말은 낡은 역사책에나 나온다. 이와 함께 「미풍양속」이란 말까지도 진부하게 느껴지고 있다. 즉 오늘의 양식과 도덕률은 어제의 그것과는 다르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풍기단속이 무력했던 것도 이런 단속의 근거에 충분한 설득력이 결핍되어 있었다는데 까닭이 있다.
정부는 10월부터 모든 퇴폐 풍조를 철저하게 단속하기로 한다고 어제 발표했다.
이런 단속이 헌법 제18조에 규정된 국민의 자유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내세우는 그 법적 근거론도 쑥스런 얘기지만,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위정 당국자가 시대의 흐름에 맞는 새 풍속과 도덕률을 국민들 앞에 얼마나 리얼하게 제시할 수 있느냐는데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문제가 있다. 가령 오늘의 퇴폐적 세태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뭣이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도박인데, 이번 단속의 대상에도 물론 이게 들어있다.
그러나 도박의 성행은 일종의 투기적·사행적 생활의식에서 나온 현상이다. 따라서 사행심이 늘어나게 하는 보다 본질적인 것들을 차제에 모두 없애야 할 것이다.
더우기 이번 단속의 범위에서 「카지노」장들이 제외되어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카지노」가 실상 외화설득에는, 별 기여도 없으면서 국민정신의 뿌리를 뒤흔드는 어엿한 퇴폐 풍조전시장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이런 것을 그대로 방임해두고서 건전한 사회풍조를 운운한다는 것은 정말로 「웃기는」일 밖에 안된다.
절대왕권도 백의를 추방하지는 못했다. 백의가 그만큼 서민의 「모럴」의식과 밀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데카당스 풍조를 몰아 내려는 운동에 대해서 우리는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그러자면 국민이 그것을 납득할 수 있을만한 일관된 「모럴」과 풍속의 시범이 먼저 앞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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