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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림 계약이 빚은 불상사|한진 파월 기술자 난동사건의 안팎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한진 파월 기술자 난동 사건은 사용자였던 한진 상사 측이 근로계약장의 임금과 제수당을 모두 지불했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파월 기술자들은 자신들이 월남 땅에서 피 땀흘려 일한 만큼 응분의 보수를 못 받았으니 기왕 지급된 임금을 뺀 나머지 차액을 지불하라고 요구한데서 비롯됐다.
이들 노사간의 고용계약은 형식상 명문으로 계약되어 있고 하자가 없다손 치더라도 기술자들의 대부분이 『월남에 떠날 때 비행기안에서 계약서에 서명할 정도로 「날림계약」이었다는 주장이고 보면 일종의 부합계약(부합계약(Contrat d'adhesion)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계약 당사자의 한쪽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정형적 약관에 대해 사실상 상대방이 포괄적으로 승인하고 마는 계약 형태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불상사는 노사간의 깊은 이해 대립과 노동청당국의 감독불충분에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동청에 의하면 파월 기술자들은 직종별 또는 직급별 임금이 상이 하나 개별적으로는 한진 측과 주 60시간, 월2백40시간 근무에 파월3개월까지 월3백40 「달러」, 3개월 후 6개월간 월3백60 「달러」, 그후 귀국시까지 월3백90 「달러」씩의 임금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했었다.
노동청에 보고된 한진 상사의 근로계약상 임금 내용은 기본 임금 187.1, 연장 수당 70.2, 야간 수당 35.1, 휴일 수당37.5 「달러」 등 월3백40 「달러」로 돼있다.
이에 따라 한진 측은 기술자들에게 수당을 포함한 전 임금을 지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자들의 주장은 이 임금액이 월2백40시간 근무의 조건에 해당하는 것이고 월 평균3백 시간을 일해 평균 60여 시간의 초과근무에 상당한 기본임금과 제수당의 초과분과 기타를 소급 지불하라는 것이다.
즉 기술자들은 체월 최종 월 수령 임금3백90 「달러」에 대한 시간급 통상임금 1 「달러」연·5 「센트」를 통상 월 임금과 수당의 산출 기준으로 정하고 월 2백8시간에 대한 통상임금 3백90 「달러」, 연장근로 수당 1백46 「달러」25 「센트」, 야간수당인 91 「달러」41 「센트」, 주휴 수당 1백50 「달러」, 월휴수당37 「달러」50 「센트」, 연휴수당 25 「달러」 등 월 임금8백40 「달러」l6 「센트」씩 받았어야했다고 산출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들의 월 임금은 3백90 「달러」이었으므로 그 차액 4백50 「달러」16 「센트」씩 21개 월분을 더 지급하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1인당 미수령액이 모두 1만환 「달러」36 「센트」이르러 원화로 3백73만여원이 된다. 따라서 한진 기술자들을 모두 4천명으로 잡고 한진 측은 1백49억원을 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한진에서는 지급된 월 임금 3백90 「달러」안에 통상 임금과 모든 수당이 포함돼 있어 기술자들의 주장은 근거 없는 것이라고 일축해왔다.
이 때문에 기술자들이 귀국 후 각계에 진정한 건수만도 36건, 한진 상사 사장 조중열씨를 상대로 형사 고소, 민사소송을 낸 것만도 36여건에 이르고 있다.
이들이 제기한 민사사건 중 1심 판결이 내려진 내용을 보면 원고측이 일부 승소한 것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원고의 주장이 『이유 없다』고 패소관결을 받은 것이 많았고 근로기준법 위반의 형사사전도 3건이 무혐의로 떨어졌다.
법 이론으로 따진다면 기술자들이 당초부터 계약상 기본임금과 연장근로, 야간근로 수당을 시간당으로 자세히 규정하지 않고 월 정액으로 승인한데 잘못은 있었다. 그러나 파월 기술자들은 『연장·야근근로가 몇 시간이 될 줄 어떻게 아느냐 수당을 미리 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월급3백90 「달러」가 기본 임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이 양측의 해석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파월 기술자들이 계약조건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은 것 등 법률 지식이 부족했던 점과 선발 경쟁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우선 파월 되고 보자는 심리작용이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진 측은 69년 운전사·하역인부 등 1천92명을 처음으로 파월 한이래 지난8월31일까지 모두 3천4백75명의 기술자를 파월, 그중 2천8백40명이 고용계약이 만료돼 귀국했고 6백35명이 아직도 취업중이다.<김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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